<중> 라인강의 기적은 어디로|청소년구직 "하늘의 별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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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마리안네·비숍」은 대학입학자격졸업시험을 2년 앞둔 열일곱살짜리 여학생. 「마리안네」는 어려서 유치원 교사가 희망이었다. 그러나 4년과정의 기초학교(국민학교)를 졸업할때 담임교사의 말에 따라 직업학교쪽을 택하지 않고 대학코스인 김나지움을 택했다.
부모 역시 딸아이의 성적이 직업학교에 보내기 아까울 만큼 좋다는 교사의 말을 듣고 김나지움 진학에 찬성했다.
그러나 요즈음 「마리안네」와 부모는 장래문제로 걱정이 태산같다. 본인은 물론 부모도 대학진학 보다는 김나지움 졸업후 취직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걱정은 청소년 실업률이 12%수준인 현재의 고용상태에서 일자리가 있을까 하는 것이다. 아직도 유치원 교사를 하고 싶어하는 「마리안네」는 그런 일자리를 갖기위해 김나지움을 졸업하더라도 2년은 실습생으로 훈련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 실습생 자리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 그래서 「마리안네」나 부모나 일자리를 구하다가 안되면 『대학이나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다. 취직못해 노는것 보다는 그래도『대학이나마 다니는것이 빈둥빈둥 노는것 보다는 나을것』이라는 얘기다. 학비는 한푼도 들지않기 때문이다.
서독의 대학이 70년대이후 팽창, 학생수가 많아지면서 대학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비판을 받은 이유중의 하나도 이처럼 「젊은 실업자」들의 「심심파적」을 위한 대학진학에서 그 일면을 엿볼수 있다.
따라서 25세이하의 서독청소년들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는 일자리를 어떻게 구하느냐에 집중되고 있다.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이들의 관심에 대해 여론조사를 실시하면 대부분이 환경오염·평화·실업문제등이 거론되는데 실업문제는 74%로 항상 가장 큰 걱정거리로 대두된다. 서독전체 실업자 2백여만명중 40%인 76만명이 청소년 실업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자리 얻기가 어려워지자 서독 청소년 사회에는 두가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자포자기해서 소의 「펑크」로 불리는 문제아 집단이 생겨 마약·폭력등의 범죄를 일으키는가 하면 더욱 열심히 노력해 사회에 적응하려는 노력등이다.
그러나 문제아 집단의 경우는 대개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서독에서 반핵데모나 평화데모때 경찰과 충돌, 유혈사태를 빚는것은 대부분앞날의 희망이 없는 이들 반항적인 청소년이다.
대학생의 경우는 다르다. 이들도 서독에서 큰 정치문제·사회문제가 되는 반공해·평화시위가 있을때 참가하지만 일정한 원칙이 있다.
학교구내에서 집단적으로 강의를 방해하며 시위에 나서는 일은 금기로 돼있다. 60연대말 유럽을 휩쓴 학생운동, 초년대말 도시게릴라의 테러리즘으로 격렬한 논란을 벌일때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학생들중에는 이런 항의운동에 공감하는 사람도 많으나 정치적인 극단 노선이나 폭력사태등에 찬성하는 일은 드물다. 항의수단으로 폭력이라도 사용하자고 주장하는 극단적 의견은 5%정도의 소수로 호응을 받지못하고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 최근 몇년간 서독대학가에는 전에 없던 분위기가 생성되고있다. 젊은이들의 보수화경향이다.
학생들의 보수화경향을 주간지슈테른은 84년 여름호에서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본대학의 역사학 교실. 학생들의 세미나 분위기가 전에 없이 진지하다. 불과 3∼4년전과는 달리 책상위에 발을 올려 놓거나 소시지를 질겅대며 먹는 학생도 없다. 청바지만 입던 여학생도 스커트를 입고 화장까지 하고 향수냄새를 풍기는것도 자주 눈에 뛴다. 그뿐인가. 디스코 파티에 양복에 나비 넥타이를 맨 젊은이까지 간혹 보이고 있다.
실제로 서독신문의 문화면에도 최근 몇년동안 예의·범절에 관한 사교규범을 가르치는 서적 판매량이 늘고 있다는 기사도 자주 눈에 뙨다.
뮌헨에서 발행되는 한 석간신문은 지난해 5주에 걸쳐 점잖은 몸가짐에 관한 시리즈를 연재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면에서 엿보이는 청소년들의 복고적 성향은 82년의 서독총선에서 보수정당인 기민당이 집권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4천만명의 유권자중 1천만명에 이르는 30세이하의 청소년의 상당수가 기민당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이 선거전 까지만 해도 이 연령계층의 유권자중 60%가 사민당을 지지했으나 82년선거에서는 기민당과 중도정당인 자민당 지지자가 60%로 역전됐던것이다.
그러나 젊은층이 이렇게 보수화 경향을 보인다고 해서 현실문제에 대한 비판적인 안목이 모두 바뀌어 세대간에 견해가 일치하는것은 아니다.
서독에는 대체로 2차대전을 겪으며 전후복구사업으로 경제번영을 이룩하는것을 경험한 30대중반 이상의 세대와 전후세대간에 현실을 보는 눈에 차이가 있다.
각기 다른 정치·경제적 배경에서 자란 세대가 뒤섞여 갈등을 빚고있는 것이다.
특히 비교적 사회보장제도가 넘치는 사회에서 자란 젊은 세대들은 현재의 풍족한 생활조건을 당연한것으로 여겨 더욱 이상적 사회를 추구, 현재의 정치질서·사회정책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서독정부가 1983년 청소년을 상대로 조사, 간행한 『불안한 세대, 청소년과 가치관변화』 란 보고서에 따르면 젊은 세대가 현재의 소비 및 소유개념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으나 아직도 절약이라는 전통적인 미덕은 계속 살려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대부분은 현존정치질서에 불만을 품고 있으며 좀더 이상적인 사회를 이룩하기위해서는 의회정치제도와 병행해서 직접적인 의사표현 수단인 항의데모등을 통한 정책결정 참여의 정치수단도 똑같이 존속돼야 하는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이 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이들 세대의 3분의 2가량이 평화운동·환경보호운동·앰네스티인터내셔널 같은 자발적인 지원단체에 참여함으로써 사회발전에 기여할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을 위해 정치적인 극단에 흐르거나 폭력을사용해야 한다는 의견은 극히 드문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면서도 젊은이들의 항의데모가 계속 되는것은 계속 늘어나는 청소년 실업, 장래에 관한 불안때문인 것으로 분석하고있다.
이들의 항의가 기존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고 특히 미국의 안보정책에 많은 비판이 가해지는데 대해 청년 미국신문기자가 「쿨」수상에게 『불쾌하지 않으냐』고 묻자 『그들의 항의는 나쁜게 아니다. 그들은 우리 기성세대를 뿌리로 해서 형성된 세대다』고 대답, 세대간의 이러한 긴장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필요불가결한 요소라고 평가, 젊은이들의 반항도 이유가 있는것으로 두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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