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여성 40대 "왠지 불안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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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40대는 제2의 사춘기, 이른바 사추기로 일컬어진다. 20대에 결혼하여 아이낳아 키우고, 집간이라도 장만하느라 20년 가까이 정신없이 내달리다 어느덧 맞게되는 여자나이 40대. 흰머리가 한두올씩 솟아나는 나이, 한숨 돌리고 자기 자신을 되돌아볼 여유가 생기는 나이니만큼 갈등과 방황이 없을수 없다. 위기의 40대를 지혜롭게 넘기는 방법은 어떤 것일까. 여성 40대를 특집으로 묶었다.
『어느날 갑자기 나 자신이 빈껍데기인것 같이 느껴지니까 모든 것이 다 시들하고 손도 까딱하기 싫어지더군요. 아이들도 남편도 이제는 내가 없어도 잘살것 같고, 나자신도 매일 해도해도 끝없는 집안일에 더 이상은 매이고 싶지 않았읍니다. 뭔가 나만 손해보고 사는 것같아 억울하더군요』
여대를 졸업한 해인 24세때 중소기업의 평사원인 남자와 결혼, 지난 17년간의 결혼생활에서 2남1녀를 낳아 키우며 알뜰히 남편 뒷바라지를 해온 모범주부 이영애씨(41·서울강남구 대치동).
이제는 남편도 회사중역으로 승진하여 얼굴을 보기 힘들게 바쁘고 생활에 여유도 생겼지만 느닷없이 언제부터인가 그 모든 것이 의미를 잃게되며, 내가 무엇인가란 갈등이 생기더라는 것이다.
이렇게 중년연령층의 가정주부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증세를 심리 및 사회학자들은 「의미상실증환자」라고 한다.
아직까지 자신이 인생에서 가장 큰 가치를 두고 추구해온 경제적 안정, 남편의 사회적인 출세, 공부 잘하는 자녀 등 모든 것이 의미를 잃게되는 현상이라고 정세화교수(이대·여성연구소장)는 얘기한다.
이는 자녀들이 어느 정도 자라 엄마품을 떠나고 남편은 사회의 중책을 맡아 바깥생활에만 몰두하게 되는 시기, 여자의 나이 40대에 맞게된다. 이러한 증상은 심하면 우울증·노이로제 등으로 발전한다.
따라서 이들의 상당수가 최근에는 단순히 시간을 줄이기 위해 무엇엔가 가치를 찾고 자신을 몰두하기 위해 집밖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전문가들이 권하는 것도 취미활동과 사회봉사 등으로 「자기의 세계」를 가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빗나간 가정 밖의 것에 대한 관심이 곳곳에 성업중인 헬드 센터고, 광신적인 종교활동이고, 투기바람에 휩쓸린 경제활동이고, 학교 안팎의 치맛바람인 교육열이고, 외제선호 등 사치열이다.
도시주부뿐 아니라 농촌·공장 등에서 힘겹게 생계를 꾸려가는 주부들 역시 형태는 다를지언정 비슷한 문제에 부닥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얘기다. <박금옥기자>

<내가 겪은 40대|어려운 고비 값진 결실못맺고…>
언제부터인지 가을이 되면 내 나이를 헤아려 보는 버릇이 생겼다. 60쪽보다는 70쪽이 더 가까운 자리에 서있음을 계산하면서 문득 올해로 불혹의 40대로 접어든 딸의 나이를 생각한다.
내가 겪었던 그때를 회상해 보니 왈칵 딸에 대한 연민의 정이 가슴을 메운다. 철없이 흘려보낸 젊은 날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 전란속에서의 뼈아픈 수많은 추억들.
아무 것 한가지도 마무리짓지 못한 채 할 일이 많아 허덕이면서 보장할수 없는 앞날의 불안 등등. 땅거미 지는 저녁 무렵이면 이유없는 설움으로 가슴이 아파왔다.
내가 겪은 40대는 이와같이 궂은 가을비 내리는 들녘에 우산없이 방황하는 듯한 외롭고 초조하고 갈등 많은 시절이었던것 같다.
지금은 그때와는 달리 모든 면에서 안정된 조건 속에서 살고는 있다지만 또 다른 조건들이 40대 여성의 정신적인 초조와 갈등을 더해주리라 짐작된다.
40대를 불혹의 대라고 했던 것은 옛말이고 가장 많은 흔들림을 겪어야 하는 연대임을 나는 경험했다. 5남매의 검은 눈동자 열개가 나로하여금 도약도 탈락도 못한채 그 고비를 넘기게 했고 세월은 20여년이 흘렀다.
지금도 자신있게 불혹의 자리에 서있노라 말할수 없는 내가 무슨 말로 딸에게 위로나 훈계를 할 수 있으랴. 그저 경건한 마음으로 바라기는 신앙을 바탕으로 한 가치관을 가지고 매일의 생활을 반성하면서 지혜롭게 어려운 고비를 값진 결실을 맺는 귀한 시절로 승화시켜 주기를 원할 뿐이다. <정진수|64·서울도봉구 월계동>

<전문가에게 듣는다|생리변화와 자신에 대한 회의 겹쳐|남 이해하고 현실직시태도 길러야>
여성의 40대가 자기를 확인할 수 있는 긍정적 시기로 활용되지 못하고 대부분 갈피를 못잡고 허둥거리는 부정적 단면을 보이는 것은 잘못된 결혼의 동기와 자세로부터 기인한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김동순씨(신경정신과·동북의원원장)는 『가족의 의미, 가족내에서 자신의 역할과 위치 등을 생각해보지 않고 그저 좋은 남자 만나 같이 사는 것정도로 결혼에 임하기 때문에 훗날의 혼란은 예정돼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백상창박사(신경정신과·한국사회병리연구소장)도 같은 의견. 그는 특히 이같이 「예정된 혼란」이 40대에 일어나는 것은 ▲여성 호르몬분비 감소 등 인체내 생리적 변화 ▲남편과의 관계에서 실망을 느끼는 심리적 문제 ▲인생 자체에 대한 의미나 자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 등 개인적 문제가 발생하는 시기며, 여기에 ▲근대화로 인한 전통적 가족제도의 붕괴 ▲과학문명의 발달로 인한 가사부담의 감소 ▲경제발전에 따른 남성(남편)들의 작업량 증가 ▲여성의 사회활동 증대 욕구 등 사회적 분위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스러져가는 젊음은 생의 의욕을 감퇴시키고, 남편에 대한 실망은 「되물리기엔 너무 늦었다」는데서 오는 절망감을 불러 일으키며, 자기 존재에 대한 회의는 허전함을 느끼게 한다. 뿐만 아니라 격무에 시달리는 남편에게서 오히려 배신감을 느끼며 성적 부조화는 이유없는 분노를 유발하게 된다.
또 수입과 지출의 불균형은 남편에 대한 원망·경멸감으로 연결되며 잘못 해석된 여성 사회활동은 무조건 밖에 나가서 배우고 가르치는 것을 능사로 여기게끔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내외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하면 잘 극복할수 있을까.
백박사는 『항상 현실에 직면하는 삶의 태도를 가지고 남을 이해하는 자세로 살아가라』고 충고한다.
김씨도 『과욕을 버리고 운명을 받아들이라』고 말하고 ▲집에서 할수 있는 일거리 찾기 ▲사회에 대해 관심을 갖고 독서할 것 ▲봉사활동 등 자신의 능력에 맞는 새로운 일을 시작할 것 등을 구체적인 방안으로 제시했다. <홍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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