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강아지"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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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다른 집 아이들도 다 그렇겠지만 우리 집 아이들도 강아지를 몹시 좋아한다. 함께 먹고 함께 잘 정도이니까 그 도가 종 지나친 것 같다. 얼마전에는 이웃집에서 강아지를 낳았는데 너무 예뻐서 꼬마들 등쌀에 한 마리를 더 얻어왔다. 좁은 집에 강아지 소리만 요란하고 더구나 밤이 되면 어미 젖이 떨어진 새끼의 울음소리 때문에 잠을 설쳐 짜증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던 차에 지난 복중에 집안의 개짖는 소리를 듣고 개장수가 기웃거리더니 후한 값으로 팔라고 은근짜를 놓았다. 팔 턱이야 없는 일이지만 나는 그에게 밤잠을 설치는 고충을 푸념했다. 그랬더니 어차피 개를 사갈수는 없다고 체념한 개장수는 그런거야 걱정하지 않아도 좋은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개장수의 말인즉 우선 가까운 자전거 수리점에 가서 튜브에 바람 넣는 펌프를 개의 귀에다 대고 바람을 세게 넣으면 고막이 터져 주변에 무감해지기 때문에 일단은 개짖는 소리를 줄일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얘기가 너무 잔혹해서 듣기가 혐오스러웠지만 내가 정작 당혹한 것은 그 다음의 말이었다. 그러고도 개가 계속 짖으면 가축병원에 가서 개목의 울대를 제거하면 완전한 「조용한 강아지」를 기를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몇백만원짜리 강아지를 가정에서 키우는 돈깨나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그 강아지를 더욱 사랑스럽게(?)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하느님이 만든 오감중에서 최고의 걸작은 눈이지만 귀는 가장 신경쓴 작품이다. 보기 싫으면 눈을 감으면 그만이고, 징그러우면 만지지 않으면 그만이고, 냄새가 싫으면 고개를 돌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귀는 줄곧 열려있으며 듣기 싫어도 들어야한다.
지금은 퇴화되었지만 모든 포유동물의 귀는 더 잘 듣기 위해서 방향에 따라서 귀를 움직일 수도 있었다.
그러한 신의 섭리를 무시하고 귀를 멀게하고 입을 막은 후에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느니, 너를 위해서 그랬다느니 하는 것은 위선이며 가증스럽기까지 하다. 진실로 그들을 사랑했다면 그들이 자유롭게 듣도록 했어야 하고, 뜻대로 짖을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 짖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그 개에 대한 연민이 나의 머리를 맴도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내게 무슨 대단한 불심이라도 있어서가 아니라 사람에게도 일면 원용되는 얘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신복룡<건국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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