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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나도 한국 야구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의 한국 야구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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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맥을 즐기는 마크 리퍼트(43·주한 미국대사) [사진 리퍼트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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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국 야구팬입니다. 한국 야구장은 정말 재미있어요. 맛있는 음식도 많고요."

마크 리퍼트(43) 주한 미국대사는 통역을 거치지 않고 유창한 한국말로 대답을 쏟아냈다. 소문난 스포츠 광인 리퍼트 대사는 지난 1일 서울 중국 정동의 미국 대사관저에서 열린 중앙일보와의 단독인터뷰에서 야구 이야기만 1시간 가까이 했다. 그의 비서진은 "대사님은 웬만한 인터뷰는 20분을 넘기지 않는다. 이렇게 오래 말씀하시는 건 처음이다. 오늘처럼 한국어를 많이 하는 것도 처음"이라고 귀띔했다.

지난 2014년 10월 한국에 부임한 리퍼트 대사는 1년 여 동안 서울 잠실과 고척은 물론 수원·대전·부산·창원 등 전국의 야구장을 찾았다. 그가 일반석에서 팬들과 함께 소리치며 '치맥'을 먹는 모습도 이제 낯설지 않다. 리퍼트 대사에게 한국 야구와 한국 문화의 매력에 대해 물어봤다. 리퍼트 대사는 한국어 질문의 90% 정도를 알아들었고, 절반 이상을 한국어로 답했다.

야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요.
"(한국어로) 저는 한국 야구팬입니다. 야구장에서 친절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무엇보다 야구장 분위기가 정말 좋습니다.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을 수 있어요.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내서 아내와 함께 야구장에 가려 합니다."
영국·인도 등 야구를 즐기지 않는 나라의 대사들과도 야구장에 가셨더군요.
"(한국어로) 맞아요. (찰스 헤이) 영국 대사님, (비크람 도래스와미) 인도 대사님이 '야구장에 가고 싶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전 정말 행복했어요. 그분들이 먼저 '한국 야구는 아주 아주 유명한 경기니까 야구장에 가고 싶다'고 하셨어요. 인도 대사님이 '야구장의 분위기가 정말 좋다. 한국 사람들이 아주 행복해 하는 것 같다. 정말 재미있어서 다시 한 번 가고 싶다'고 했어요."
한국 야구장의 어떤 점을 좋아하시나요.
"(한국어로) 이건 영어로 말해야 합니다. (영어로) 먼저, 선수별 응원가가 기발합니다. 유명한 노래를 개사한 응원가가 귀에 정말 잘 들어옵니다. 치어리더나 마스코트가 열심히 준비한 게 느껴져요. 관중이 경기에 동참하도록 독특한 장치들이 있어요."

갑자기 리퍼트 대사는 나미의 '영원한 친구'를 개사한 두산 내야수 오재원의 응원가를 직접 불렀다. "오, 재원이 안타~!"

야구장에 한국 음식을 즐기신다면서요.
"(영어로) 전 '치맥'을 좋아합니다. 김밥이 있다면 더 좋고요. 오징어도 가끔 먹죠. 한국 야구장에선 다양한 음식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음식 얘기를 하니 침이 고이고, 배가 고프네요. 아,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날씬하잖아요. 그런데 야구장에서는 굉장히 많이 먹습니다. 한 고등학생이 피자 일곱 판을 들고가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일반석에서 관전하는 모습을 자주 봤습니다.
"(영어로) 맞습니다. 일반석이 훨씬 재밌습니다. 주로 1루 쪽에 앉습니다. 아버지가 신시내티 레즈 팬이었는데 1루 내야석 시즌 티켓을 가지고 있었죠. 1루 내야석에 있는 팬들은 열심히 응원을 하죠. 또 파울볼이 그쪽으로 많이 날아오거든요. 한국에서도 1루 쪽에서 응원하는 게 좋아요. 가족과 갈 때는 구단의 배려로 테이블이 있는 VIP석에 앉기도 합니다. (16개월 된 아들) 세준이가 원숭이처럼 테이블 위를 기어다니거든요. 세준이를 위한 공간이 필요해서요."

리퍼트 대사는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출신이다. 그는 지난해 1월 서울에서 태어난 아들에게 '제임스 윌리엄 세준 리퍼트'란 이름을 붙여줬다. 한국식 미들네임인 세준(洗俊)은 '정직한 삶을 사는 특출한 인물'이란 뜻을 갖고 있다.

지난해 5월 27일 NC와 두산의 경기를 보기 위해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창원 마산구장을 찾은 모습. 리퍼트 대사는 미 대사관 직원 등 10여명과 함께 마산구장에 도착한 뒤 NC 다이노스 이태일 대표와 20여분간 면담하고 경기를 보고 갔다. [사진 NC 다이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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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님이 일반 팬들과 막 어울리면 경호원들이 곤혹스럽겠습니다.
"(한국어로) 그 말이 맞아요. 제가 VIP석에 앉으면 경호원들이 조금 쉴 수 있어요. 일반석에 앉으면 경호원들이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대신 음식을 많이 사서 경호원들에게 드릴 거에요. 하하."
한국 프로야구 구단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팀은 어디인가요.
"두산 베어스입니다. 세준이는 삼성 라이온즈를 좋아합니다. 항상 삼성 유니폼을 입어요. 지난해 두산과 삼성이 맞붙은 한국시리즈에서는 의견이 갈라졌죠. 아내와 세준이는 삼성, 저는 두산 유니폼을 입고 갔어요. 다른 사람들이 좀 이상하게 봤을 거 같아요."
한국 선수 중 누구를 가장 좋아하나요.
"음, 어려운 질문입니다. 지난해에는 넥센 박병호를 좋아했습니다. 그를 보는 게 즐거웠습니다. 그의 스윙과 스타일 모두 놀라웠어요. KBO리그 선수들이 다른 리그로 떠나면 새로운 선수를 찾는 재미가 있죠. 올해는 두산 오재원 선수의 플레이를 좋아합니다. 좋은 타격을 갖고 있어요. 콘택트 능력이 좋아 쉽게 아웃되지 않아요. 특히 (몸을 던지는) 허슬플레이가 인상적입니다. 투수 중에서는 같은 미국 출신인 더스틴 니퍼트를 좋아합니다. 아주 똑똑하고 컨트롤이 좋은 투수죠. 얘기하다 보니 두산 선수들만 꼽았네요."

2016년 4월 28일 롯데전에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시구자로 나선 모습이다. 염태영 수원시장이 시타를 맡았다. [사진 kt 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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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출신 선수들이 메이저리그(MLB)에서 활약하는 걸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한국 야구와 MLB에 모두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서 행복합니다. 그들이 자랑스러워요. 한국 팬들도 그들 덕분에 MLB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겠죠. 한국 야구와 미국 야구, 서로에 대한 관심이 커질 겁니다. 한국야구 팬으로서, 또 한·미관계 발전을 위해 일하는 사람으로서 뿌듯합니다. 언어와 문화가 달라 한국 선수들이 MLB에 적응하기 힘들 겁니다. 게다가 MLB는 수준 높은 리그잖아요. 김현수 선수가 처음엔 고전했지만 점점 잘하고 있어요. 박병호 선수도 높은 타율은 아니지만 파워를 보여주고 있고요. 최근에 폴 몰리터 미네소타 감독이 '박병호가 반환점을 돌았다'고 말했다고 하더군요. 앞으로 더 좋은 활약을 할 거라고 봅니다."
한국 야구를 통해 한국 문화의 잠재력을 평가하신다면요.
"두세 가지 단어가 떠오르는데요. 첫 번째는 '역동적(dynamic)' 이라는 겁니다. 끊임없이 변화하고,진화하고, 성장하는 게 한국 문화의 강점입니다. 두 번째는 '독특함(unique)'입니다. 한국은 다른 문화와 섞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고유한 색깔을 만들어냅니다. 미국 스포츠인 야구가 한국에서 색다른 문화를 만들었잖아요. KBO리그는 한국적인 방법으로 수준을 높인 콘텐트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이유로 전세계가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미국으로 돌아가면 응원이 싱겁고 치맥이 그립지 않을까요.
"아마 그럴 거예요. 그땐 한국으로 휴가를 올 겁니다. 야구장에 가야죠."

인터뷰가 끝나자 리퍼트 대사는 "정말 즐거웠다. 와줘서 고맙다"며 취재진에게 선물을 줬다. 성조기와 마크 리퍼트 대사(Ambassador Mark Lippert)의 이름을 프린트한 야구공이었다.

|마크 리퍼트(Mark William Lippert) 주한 미국대사
생년월일 및 출생지=1973년 2월 28일(오하이오주 신시내티)
학력=스탠퍼드대학교 정치학 학사-동 대학원 국제정치학 석사
주요 경력
2005~2008년 미국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 외교정책보좌관
2007~2008년 미국 해군특수부대 정보장교
2009년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통령 부보좌관, 비서실장
2009~2011년 미국 해군특수전개발단 버지니아주 정보장교(아프가니스탄 파병)
2012년 5월~9월 미국 국방부 아시아태평양안보담당 차관보·국방부 장관실 비서실장
2014년 10월30일~ 주한 미국대사관 대사(역대 최연소)
2015년 7월18일 한국야구위원회(KBO) 명예홍보대사 위촉

리퍼트 대사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각별한 사이로 잘 알려져 있다. 리퍼트 대사는 외교안보 정책 수립에도 관여했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비서실장 등을 지내기도 했다. 리퍼트 대사가 특수부대 일원으로 2007년 이라크 파병을 앞두고 캘리포니아에서 훈련을 받을 당시 오바마 대통령 후보가 '보고싶다, 형제'라고 이메일을 보낼 정도로 격의 없는 사이다. 특히 둘은 백악관과 캠프 데이비드(미 대통령 휴양지)에서 함께 농구를 즐기기도 했다.

리퍼트 대사에게 '농구 실력은 누가 더 나은가' 라고 묻자 그는 우리말로 이렇게 대답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계속 이겼습니다. 미국 대사(리퍼트)보다 그(오바마)가 더 좋은 선수입니다. 오바마는 너무 커요. 너무 빨라요."

리퍼트 대사는 "슛도 나보다 낫다. 오바마 대통령은 매우 훌륭한 농구선수다. 1대1로 경기를 할 기회가 몇 차례 있었는데 최선을 다해서 따라가기만 했다"며 웃었다. 리퍼트 대사는 지난해 4월 18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롯데전에서 시구자로 나섰다. 대사관저 응접실에는 당시 사진이 놓여 있다. 높은 타점에서 공을 뿌리는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리퍼트 대사는 "어렸을 때부터 야구를 즐겼고, 스탠퍼드 대학에서 1년 정도 선수로 뛰기도 했다. 팀에 투수가 모자라면 마운드에 오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투수 리퍼트의 실력은 어느 정도였을까. 리퍼트 대사는 "강속구는 아니지만 공이 꽤 빨랐다. 하지만 무브먼트(공의 움직임)가 전혀 없는 게 문제였다. 깨끗하게 날아갔다. 체인지업이나 커브도 던질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투구폼을 직접 보여주며 "직구를 던질 때와 커브를 던질 때 릴리스포인트(공을 놓는 지점)가 너무 달라서 공을 던지기도 전에 상대 타자가 무슨 공인지 알아챘다. 그래서 주로 3루수로 뛰었다"고 털어놓았다.

리퍼트 대사는 야구 뿐만 아니라 모든 스포츠를 좋아한다. 지난해 광주 유니버시아드에서는 농구장을 직접 찾아가 미국 대표로 출전한 캔자스대를 응원했고, 지난 2월에는 한국해양대 학생 20명과 함께 조를 나눠 수영 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리퍼트 대사는 "농구·야구·미식축구를 다 좋아한다. 세 종목의 시즌이 겹치지 않아 다행이다. 1년 내내 쉬지 않고 스포츠를 즐긴다"고 말했다.

김식·김효경 기자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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