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현의회 선거, 미군기지 반대파 승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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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일본 후텐마(普天間) 미군기지 이전 문제를 놓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대립해온 오나가 다케시(翁長雄志) 오키나와(沖?)현 지사가 5일 현의회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를 지지하는 미군기지 현내 이전 반대세력이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미·일 동맹의 상징으로 1996년 양국이 합의한 후텐마 기지의 헤노코(邊野古) 이전 사업은 더욱 꼬이게 됐다. 가데나(嘉手納) 기지의 미국 해병대 출신 군무원(32)이 20세 오키나와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지난달 체포돼 미군에 대한 현지 주민들의 반감이 커진 것이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

오나가 지사 측 48석 중 27석 차지
미 군무원, 여성 살해 사건 영향

오나가 지사를 지지하는 공산당과 사민당 등은 현의회 48석 중 27석을 차지했다. 기존에 비해 3석이 늘었다. 공산당과 사민당이 각각 6석을 확보했고 지역정당인 ‘오키나와사회대중당’이 3석, 무소속이 12석을 얻었다. 반면 오나가 지사의 반대 세력인 자민당은 1석을 늘린 14석을 확보하는데 그쳤고 공명당과 오사카유신회는 기존 의석과 같은 4석과 2석을 유지했다. 무소속도 1석에 머물렀다.

오나가 지사는 기자회견에서 “오키나와에 74.46%의 주일 미군 전용시설이 있다. 이것을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이번 선거의 결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후텐마 기지의 현내 이전을 저지한다는 내 공약이 일정 정도 현민으로부터 이해를 얻은 것으로 생각한다. 큰 승리”라고 평가했다. 이어 “보수와 혁신을 넘어 헤노코에 미군 기지를 만들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현민의 생각이다. 앞으로도 이전 저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번 선거에서 오나가 지사 측은 미 군무원이 저지른 살인사건을 집중 부각시켰다. 오키나와에 미군기지가 있는 한 똑같은 비극이 재연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후보들은 전 미군기지의 철거와 미 해병대의 철수도 촉구했다. 이에 맞서 자민당 등은 미군기지에 대한 언급을 자제한 채 지역경제 활성화 등 다른 현안들을 호소했다. 하지만 투표 전날 밤 가데나 기지의 미 해군 하사(21)가 음주운전 중 도로를 역주행하다 차량 2대와 정면 충돌했다. 일본인 남녀 2명이 중상을 입었다. 자민당 관계자는 “우리 당에 역풍이 분 것이 틀림없다”고 했다.

아베 총리는 6일 정부·여당 연락회의에서 오키나와 미군 음주 사고에 대해 “정말 유감이며 언어도단(言語道斷·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힘)”이라고 말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이날 회견에서 “일본의 안보환경을 생각하면 헤노코 이전은 유일한 해결책이다. 이 생각엔 변함이 없다”며 후텐마 기지 이전을 계획대로 추진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도쿄=이정헌 특파원 jhleeh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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