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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 놓고 엇갈린 처방 여전|정부-업계-금융계 「경제토론」 중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27일 시작된 정부와 업계·금융계간의 토론회에서 업계 측은 안정 위주의 정책이 기업의 의욕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주장하고 보다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을 요청한 반면 정부측은 안정을 저해하면서 성장 위주의 정책을 펼 수는 없다는 등 그간의 엇갈린 처방을 계속 옹호.
이날 롯데 호텔에서 비공개로 열린 토론회는 정부 쪽 발표자들이 미리 준비해온 자료를 읽는 대신 자유토론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고 토론은 경제학 박사이기도 한 금호그룹의 박성용 회장이 자연스럽게 이끌어나갔다.
당초 참석 예정이던 신격호 롯데 회장은 일본 체류 중으로 불참.
첫 번째 정부 발표자로 나온 신병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은 『경제란 기업인이 이끌어 나가는 것』이라며 현재 내외여건이 어렵다해도 기업인들이 앞장서서 적극적인 투자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신 부총리는 또 기업인들이 노사관계와 기업간의 협력에 보다 신경을 써달라고 주문하고 특히 해외에서 국내 기업간의 과당경쟁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고 강조.
업계 측은 요즘 여건으로 볼 때 정부가 생각하는 하반기 7∼8%성장은 어렵지 않겠느냐는 반론을 제시하고 내수 경기의 부양 등 보다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업계 쪽은 최근 경기대응책이 수출촉진에만 치중된 감이 있다고 지적하고 물가를 2∼3% 묶는다는 식의 경직된 발상보다는 현실에 맞춰 4∼5%까지 융통성을 두고 기업의 생산 의욕을 높여달라고 요청.
신 부총리는 이에 대해 현재로서는 정부가 지금까지 취한 수출촉진 및 투자활성화대책 이상의 부양책을 쓸 생각은 없다고 밝히고 『1∼2개월쯤 더 지켜보다가 그래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 새로운 경기부양책을 고려해 보겠다』고 답변.
업계 쪽은 또 신 부총리의 투자촉진 요청에 대해 『투자를 하고 싶어도 부실기업 등으로 많은 돈이 빠져나가 실제 건실한 기업에 투자를 하는데는 애로가 많다』고 주장하고 투자는 적어도 2∼3년 앞을 내다보고 하는 것인데 정부정책에 일관성이 없어 망설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지적, 조령모개 식의 정부정책을 공박했다.
업계는 또 정부의 정책이 대기업 아니면 대만·싱가포르 식의 영세 중소기업에 치중돼 있다고 주장하고 우리 규모로 보면 중기업쯤 되는 일본식 중소기업 쪽에도 신경을 쓰는 등 중소기업의 개념을 우리 경제규모에 맞춰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
정부의 주택경기촉진과 관련, 업계의 한 참석자는 자신의 실례를 들어 『28평형 분양은 잘 되는데 30평이 넘는 아파트는 잘 안 나가더라』고 밝히고 소형주택 쪽에 정부의 지원책을 요망.
이어 가진 주거래 은행장과의 간담회에서는 업계 측이 은행의 아쉬운 곳을 대신 긁어주는 묘한 요청이 나오는 「상부상조」의 분위기 속에 진행.
은행측은 국내 기업들의 외국은행 거래비중이 10%를 넘고 있는데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중은행의 입장을 고려해 거래를 시중은행에 집중토록 배려를 요망.
이번 토론회는 국내 30대 재벌 총수와 시중은행장·경제각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초유의 모임이라는 떠들썩한 관심과는 달리 알맹이는 이제까지의 간담회와 별 차이가 없어 아무래도「과대포장」이란 느낌.
뚜렷한 주무부서가 없어 은행연합회·각 시중은행·정부 사이드 쪽에서 진행이 갈팡질팡했던 것은 그렇다고 쳐도 우리 나라 경제가 30대 재벌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게 아닌데 회의를 비공개로 진행, 참석치 못한 국민이나 업계사람은 무슨 중요한 얘기가 오갔는지 알 수도 없는 실정.
경제가 어려운 판에 국내의 내노라 하는 경제계 인사가 망라되어 앞으로 한달 가까이 열릴 토론회가 계속 첫날처럼 나가다가는 인력·시간낭비라는 평을 면치 못할 느낌이어서 이왕 긴 시간을 들여 우리 경제의 어려운 점을 짚고 대책을 마련하는 토론을 할 바에는 툭 털어놓고 공개 리에 하는 게 바람직하리라는 게 중론이다.<박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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