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단 한 명의 전우도 전장에 남겨두지 않는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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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7월 13일 새벽 3시.

"어둠 속 폭우를 뚫고 갑자기 중공군 피리소리가 들렸지...점점 커지는 소리에 심장이 쿵쾅거렸고...적의 포탄이 2년간 나와 함께한 안하사의 참호에 떨어졌어......"

아직도 13만 호국용사들은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친 그 산야 어딘가에 묻혀있습니다. 이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 드려야 하기에 '대한민국'은 오늘도 1000m고지를 오르고 있습니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9100여 위의 전사자 유해를 발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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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O] 유해발굴감식단/ "단 한 명의 전우도 전장에 남겨두지 않는다"

#1
“1953년 7월 13일 새벽 3시.
어둠 속 폭우를 뚫고 갑자기 피리소리가 들렸어.
중공군의 진격 신호였지.
비상이 걸렸고 참호에서 전방을 주시하던 나는
점점 커지는 피리소리에 심장이 쿵쾅거렸어.
중공군이 시야에 들어오자 일제히 총을 쏘고 포탄을 날렸어.
사진설명: -

#2
그러던 중 적의 포탄이 2년간 나와 함께 한
안은준(당시 21세) 하사의 참호에 떨어졌어.
안 하사가 숨졌지만 나는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어.
중공군의 공격이 계속됐고 결국 우리는 후퇴했지.
앞만 보며 정신 없이 달리는데 사방에서 전우의 비명이 끊이질 않았어.”

-6·25전쟁 당시 ‘여문리 전투’에 참전한 조규남(83)씨 증언
사진설명: -

#3
전우의 유해를 수습하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된 노병은
당시 치열했던 전투 현장을 상세히 설명합니다.
사진설명: 2016년 3월 17일, 당시 전투지역 살펴보는 6.25 참전용사들

#4
이 모습을 영상에 분주히 담는 이들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사진설명: 2016년 3월 17일, 참전용사 증언 녹취하는 유해발굴단

#5
육·해·공군과 특전사까지 200여 명의 장병*으로 구성된 이들 대부분은
발굴과 감식에 전문 지식을 갖고 있는 고고학·사학·의학·방사선학 전공자들입니다.
*직원·간부 60명, 병사 140명
사진설명: 2007년 2월 7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창설

#6
이들은 산야 어딘가에 잠든 13만 호국용사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매일 1000m 고지를 오릅니다.
사진설명: 2009년 3월 17일, 충남 금산 600고지에서 발굴 중인 장병들

#7
보통 발굴이 시작되면 한 곳에서 4~6주간 머무르며
나무에 새겨진 총탄 흔적과 당시 거주했던 주민들의 증언에 따라
‘나올 지 안 나올지 모를’ 유해를 찾습니다.
사진설명: 2006년 9월 13일, 유해발굴현장

#8
평균 170곳을 발굴해야 1구 정도의 유해를 찾을 수 있다는데요.
그래도 2000년부터 지금까지
9100여 위의 전사자 유해를 발굴했습니다.
사진설명: 2011년 6월 7일, 연기군 금남면에서 유해발굴 중인 장병들

#9
신원이 확인된 유해가 반 백 년이 지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때면
가슴이 먹먹해진다는 유해발굴감식단
사진설명: 2006년 9월 13일, 유해발굴감식단

#10
"80대가 된 여동생이 오빠의 유해를 감쌌던 태극기를 어루만지며
“오빠, 64년이 지났지만 이렇게 돌아와줘서 고마워요”라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데 보람과 함께 가슴 한 쪽이 먹먹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유해발굴감식단장 이학기
사진설명: 2004년 6월 14일, 경기 가평군 전사자 유해발굴 현장 방문한 형제들[내용과 무관]

#11
그러나 9000여 위의 유해를 발굴했지만
이름을 되찾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사례는 113명뿐
신원을 대조할 가족의 DNA가 등록돼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진설명: 2015년 6월 24일, 유해발굴감식관

#12
“전사자 직계가족, 8촌 이내 유전자 샘플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타액으로도 DNA 등록이 가능하니 국민들이 DNA검사에 참여해줘야 합니다.”
안타까움에 매번 이러한 당부를 잊지 않는 유해발굴감식단
사진설명: 2012년 6월 7일, 6.25 전사자 유족의 DNA시료 채취

#13
DNA 등록과 함께 ‘시간과의 싸움’에도 직면한 유해발굴 사업
발굴지역은 주로 참전용사, 지역주민 제보로 선정되는 데
이들이 주로 85세 이상의 고령이기에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고 합니다.
사진설명: 2016년 3월 18일, 6·25참전용사 초청해 유해매장지역 증언 중인 유해발굴감식단

#14
‘단 한 명의 전우도 전장에 남겨두지 않는다’는 사명으로
60년이 흐른 지금 또 다른 전장에서 분투하고 있는 유해발굴감식단
사진설명: 2008년 8월 8일, 경기 가평 하판리 해발 500고지에서 유해발굴 중인 감식단

#15
번호로만 남아있는 무명용사들의 이름을 찾아주는 일.
그것이 진정한 호국보훈을 실천하는 길 아닐까요.
사진설명: 2010년 6월 17일, 강원 철원 한 고지에서 발굴한 전사자 유해 운구 중인 감식단

취재·구성 임서영
디자인 박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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