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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시착 중공기와 승무원 어떻게 되나|생존자의사 달라 처리결과 주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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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중공군용기의 영공침범 불시착 사건은 조종사가 자유중국으로의 정치적 망명을, 통신사는 본국귀환을 희망하는 등 생존자의 의사가 엇갈리고 있어 처리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정부는 사건의 경위조사가 끝나는 대로 국제법상의 관례와 외교적 측면을 최대한 고려, 원만히 처리한다는 기본방침을 갖고있어 이해당사자인 대 중공 및 자유중국과의 외교교섭이 앞으로의 관심사가 될 것 같다.
80년대 들어 중공기들이 여러 차례 한국에 불시착해 한·중공, 한·대만관계에 묘한 파장을 불러일으키며 한·중공 관계개선의 기틀을 제공했던 만큼 최종 처리방침의 결정에는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또 조종사와 통신사의 의사가 서로 달라 이에 따른 분리처리 방침이 결정될 것인가와 중공이 승무원과 기체반환을 위해 우리측에 협상을 공식 제의할 것인지 의 여부가 관심의 적이 되고있다.
타국인이 비행기를 이용, 제3국에 무단 착륙하는 행위는 일단 불법입국과 영공침범에 해당하므로 승무원과 기체처리문제는 영공 국의 영토주권에 귀속된다.
이에 대한 국제관행은 ▲정치적 동기에 의한 불시착인지 ▲조난이나 불가항력적 사고에 의한 긴급피난인지에 따라 적용원칙이 달라진다.
정치적 동기로 망명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이를 허용하는 것이 국제법 및 국제관행으로 확립돼 있다.
유엔의「영토적 비호」에 관한 결의(67년12월)는 정치적 신념 등으로 인하여 자국 영역 내로 피난해온 외국인을 비호하고 이를 허용할 권리를 부여하고있다.
이에 따라 행해지는 망명허가는 타국에 대해 비우호적 행위가 되지 않는다.
중공비행기가 망명을 위한 기착지로 한국을 선택한 경우는 80년대 들어 민항기를 포함해 3차례로 정부는 이미 이들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 망명을 허용해준 선례가 있다.
82년 10월 중공군의 오영량 대위(미그19기 사건)와 83년8월 중공공군시험비행단의 계천권조종사(미그21기)사건은 망명에 의한 군용기 처리사례에 해당한다.
당시 정부는 이들 조종사를 항공법과 출입국관리법 위반협의로 입건, 기소유예 처분한 뒤 본인의사에 따라 자유중국으로 출국시켰다.
당시 중공은 조종사와 기체송환의 요구를 천명했으나 우리정부에 공식요청은 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의 경우 조종사는 망명을 요청하고 있어 선례가 원용될 가능성이 일단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정부당국자는 이번 사건이 과거 미그19, 21기 사건과 유사하더라도 전례대로 처리되지 않을 수 있다고 시사해 새로운 선례가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번 사건이 정치적 망명이 아닌 불가항력이나 조난에 의한 경우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조난 군용항공기의 .외국영토 착륙에 관한 국제법은 아직까지 완전히 확립돼 있지 않고 있으며 타국영역의 통과 및 침해에 따른 처리방안은 군함에 적용되는 국제법과 국제관행상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군용기의 경우도 조난 당한 군함의 영해진입원칙을 적용하는 것이 무난하다고 보고, 조난 기에 의한 영공침범에 대하여는 국내법령을 적용하여 처벌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국제법학자들의 통설이다.
통상 불시착 또는 추락의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불가항력으로 간주되어 영공침범이 위법이 아닌 것(위법성 조거)으로 인정돼 영공 국은 승무원을 억류하는 등의 형벌을 가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이 재난에 의한 긴급피난으로 밝혀지면 조종사와 비행기를 본국에 돌려보내는 것이 관례다.
기체에 관해서는 현행 국제법과 관행상 영공 국이 소속 국에 반환해야할 확립된 의무는 없으며 그 처분은 우리 재량에 속한다. 다만 국제 예양 정신으로 반환되는 경우가 있다.
미그19, 21기사건의 경우 정부는 중공 측이 공식적으로 기체반환협의를 제의하거나 요청해 올 경우 그 협의에 의해 처리하는 방안이 고려될 수 있음을 강조했으나 중공 측은 기체송환만을 언급했을 뿐 공식요청을 하지 않아 현재 보관중이다.
따라서 중공 측이 공식반환을 요청할 경우 우리측은 그 반환을 위한 협상에 응할 용의를 밝힐 것으로 보인다.
군용기 불시착과정에서 숨진 우리 농민 배봉환씨의 사망과 재산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문제는 사건의 성격에 따라 결정된다.
조난에 의한 불법 영공침해일 경우 일반국제법에 따라 중공 측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으나 망명으로 밝혀지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으로 중공의 망명지로서 한국이 다시 한번 부각된 셈인데 중공은 한국 행 시도를 억제하기 위해 정식협상을 제기해올 가능성이 있다.
지난 83년 .민항기사건 때「양측이 관련되는 긴급사태 발생 시 상호협조정신이 유지돼야 한다」고 양측이 합의한 만큼 이번 사건이 긴급사태로 간주되면 이미 열려있는 협상창구인 주 홍콩영사관과 신화사 홍콩분사와의 직접협상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한·중공간의 사실관계가 기묘하게도 중공항공기와 선박들의 우리 영공 및 영해침범에 의해 축적돼 관계개선의 기틀이 마련된 만큼 사건처리과정의 의미는 상당히 클 것이다.<박보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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