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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치 북녘땅 그림 1만5000점 모이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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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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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그린 북녘’ 프로젝트 포스터가 붙어있는 냉면집에서 만난 강익중 씨는 “면발도 자르지 않는 실향민의 마음을 벽화로 표현하겠다”고 밝혔다. 이 그림들은 앞으로 임진강에 세울 ‘꿈의 다리’의 바탕이 된다.

설치미술가 강익중(56)씨는 약속 장소로 평양냉면 맛이 좋다는 을지면옥을 골랐다. 그가 진행 중인 ‘꿈에 그린 북녘’ 프로젝트 현장 점검을 겸해서다. 실향민들이 고향 음식을 찾아 모인다는 이 노포 들머리에는 ‘그리운 내 고향 기억하시나요?’라는 문구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자신이 창안한 ‘가로 세로 3인치 작은 그림’으로 남과 북을 이어보자는 아트 캠페인을 1999년부터 이어온 강씨는 어린이들과 함께 하던 이 기획을 이번에는 장년층으로 확대 했다.

강익중 ‘이산가족 프로젝트’
오두산 통일전망대에 벽화로 설치
어린이 100만 명 ‘그림 다리’ 계획도
“이땅에 평화 가져오는 백신 기대”

“이 집에서 가위로 면발을 자르려다 혼났습니다. 남북이 갈라진 것도 억울한 데 냉면까지 잘라 먹느냐고요. 북녘 프로젝트는 북에서 내려오신 어르신들이 3인치(약 7.6㎝) 크기 종이에 두고 온 고향산천과 사람들을 그리는 기획입니다. 19일부터 정부에 등록된 이산가족 6만9400여 명에게 안내문을 보내고 통일교육원과 KEB하나은행 등에서 접수를 시작했는데 의외로 작품과 사연이 좋아요. 혹시 헤어진 친구를 찾을까 싶어 등록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제2의 남북 이산가족 찾기 같은 분위기랄까요.”

강씨는 1만5000점 그림이 모이면 대형 벽화를 완성해 광복 71주년을 맞는 오는 8월 15일 오두산 통일전망대에 세운다고 밝혔다. 그는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흐르고 북녘 땅이 보이는 이곳에 벽화가 영구 설치되면 후손들이 찾아와 할아버지 할머니의 옛 이야기를 보면서 한반도의 미래를 꿈꾸지 않겠느냐는 희망을 내비쳤다.

이번 북녘 프로젝트는 앞으로 임진강에 세울 ‘꿈의 다리’의 밑바탕이 된다. 달 항아리처럼 둥근 다리에 100만 명 어린이의 그림을 빼곡 채우고 남북이 함께 부르는 노랫말을 오방색 한글로 표현한다는 계획이다.

“제가 2008년 경기도미술관에 전국 5만 명 어린이들이 보내준 ‘3인치 그림’으로 완성한 ‘미래의 벽’에 얼마 전 다녀왔어요. 당시 안산초등학교에 다니며 그림을 보낸 아이들 중 ‘세월호 사건’으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이 있다는 겁니다. 부모가 와서 그림을 복사해 간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오두산 벽화도 나중에 돌아가신 분들의 기록으로 남아 이 땅에 평화를 가져오는 백신 구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강익중 씨는 오는 9월 런던 테임즈 강에서 벌어지는 야외 페스티벌에 대표 작가로 선정돼 연등 작업으로 ‘그리운 내 고향’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는 “우리가 가장 잘 아는 얘기를 전 세계인에게 전파해 세계의 눈이 남북의 평화를 향한 의지에 쏠릴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글·사진=정재숙 문화전문기자 서재준 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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