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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고민하는 정치 좌담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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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참석자>
▲이정복 <서울대 교수·정치학>
▲이택돈 <신민당 국회의원>
▲한흥수 <연세대 교수·정치학>
▲이정=해방 40년의 우리 정치를 분석·진단하는데는 여러가지 자(척)가 있을 수 있고 입장에 따라 상이한 여러가지 결론도 나올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우선 민족국가의 존립기반이란 면에서 본다면 현재 상황은 해방당시에 비해 엄청나게 확충돼 있읍을 지적하고 싶군요. 당시의 국방력·행정력·경제력등 사회경제적 역량은 거의 진공상태였다고 할수 있는데 요즘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예산을 짠다는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국가존립기반은 비약적으로 확충된 셈이죠.
그러나 반면 외세로부터 국익을 지킨다는 의미로서의 정권의 자주성은 역설적으로 제3공화국의 한일협정등을 고비로 오히려 퇴보한다는 인상입니다. 그 원인은 정권의 정통성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있지않나하는 생각입니다.
▲한=그러나 민족국가 존립을 위한 내부적 인식역량을 이루는 국민의식수준향상은 미소 양극시대의 붕괴등을 거치면서 자생적 국제감각을 터득할 정도로 비약적인 것이었습니다.
▲이택=해방직후 국민들의 정치관이 영웅시대, 신화시대의 산물인 순수·낭만적 경향을 띠고 있었던데 비해 지금은 국민들이 정부·국가를 보는 눈이 현실화되어 「자기 몫을 찾자」는 자주적 입장으로 바뀐것도 주목해야 할 현상이지요.

<욕구 분출구 있어야 사회적 불안이 없다>
▲이정=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국민의식수준」과 「정치수준」이 적절히 접합되어 있는가 하는점에 있을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민의식수준은 높아졌지만 원자화되어 있고 참여의 통로가 막혀 있습니다.
양측의 접함점으로서의 정당·언론·이익집단등의 정치수준은 제1공화국에 비해 오히려 퇴조한 느낌입니다.
통치체계가 자체 흡수력을 갖고 유지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정치통로의 조직화를 보장해야 합니다.
다양한 정치적 욕구를 강제적으로 억압할 경우 배출구가 없는 욕구는 사회불안을 야기하기 마련이어서 곳곳에서 시위와 충돌이 일어나며 이 경우의 억압은 결과적으로 보면 한 체제가 스스로의 묘혈을 파는 결과를 준비해 두는것과 같습니다.
▲이택=정치란 전 국민이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국민이 할수 있는 정치는 기표소 안에서만 존재합니다. 기표소 안에서 만의 정치는 국민들의 정치적 욕구를 제한하게 되며 이 경우 국민적 코러스를 잃은 정치는 불만세력을 조장할 뿐입니다.
▲한=결국 광복 40년사의 정치변천은 국민의식수준과 이에따른 통치차원의 대응이 만나는 자리에서 잘 설명됩니다.
해방직후의 민주주의 개념은 교과서적인 원칙론에 입각해 있었습니다. 그것은 독재를 하던 이승만대통령 당시까지만 해도 「최소한 지켜야 하는 것」은 지켜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는 점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3공화국에 이르러 「교과서적 민주주의」와는 다른식의 정치도 있다는 논리가 나타나기 시작했죠.
▲이택=「한국적 민주주의」등이 나오는 배경이 그런것이겠죠.
▲한=그렇다고 볼수있죠. 구조기능주의적 입장에서 볼때 편의상 「투입능력」을 국민의 정치참여능력으로 놓고, 「산출능력」에 국가정책능력 혹은 생산능력을 놓아보면 그것은 명확해집니다.
4·19는 산출능력이 빈약한 상태에서 투입능력이 쏟아져나와 데모제1주의까지 나타난 반면 5·16이후는 산출능력을 강화한다는 입장 아래 투입능력을 억제한 결과 짧은 기간동안 상당한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산출능력의 자체모순을 낳아 분배의 문제등의 체제환부를 드러낸 셈이죠.
결국 투입과 산출의 불균형은 교과서적 자유민주주의를 유보시키고 다만 산출제1주의의 목적을 위해 민주주의 이름앞에 여러가지 수식어를 달아 투입억제를 정당화해 국민들의 민주주의관에 혼란을 가져온것이 아닐까요.
▲이택=결론부터 얘기한다면 40년간 정치는 후퇴했다는 생각입니다. 해방초창기의 교과서적 민주주의 개념은 이것저것 수식어를 단 접목민주주의로 장기간 변형되어 왔습니다.
저는 이렇게 된 이유가 집권층의 정권연장 욕망에서 기인됐다고 봅니다.
그 결정적 후퇴는 5·16이었습니다. 그것은 군인들이 애초의「원대복귀」공약을 백지시킴으로써 국민들에게 불신의 씨앗을 심어 주었고 마침내 정치혐오풍토로까지 이끌어 갔습니다.
▲이정=동감입니다. 광복 40년동안 모든 분야가 괄목할 만큼 성장했는데 유독 정치만이 퇴보한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그 최초의 후퇴가 이승만정권의 3선개헌이었고 그 후의 5·16도 후퇴의 결정적 계기가 됐죠. 5·16이 발생할 당시 학생들은 사회적 혼란을 염려해 자중하고 있었으며 사회적 혼란을 민주당 정권에 돌리기에는 장면행정부의 임기가 너무 짧았습니다.
또 한번의 후퇴가 유신체제입니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정치사를 몇십년 후퇴시켰으며 아직까지 우리사회 구석구석에 남아있는 것입니다.
, ▲한=역설적일지 모르지만 저는 4·19의 시기가 나빴다는 생각이 듭니다. 4·19가 제반 사회의식이 상승한 시기에 일어나 일종의 「시민혁명」의 성격이 됐었으면 하는 생각이 그것이죠. 4·19는 독재체제에 대한 투쟁의 성격이상의 어떠한 대안이 마련되지 않은채 일어났습니다.
▲이정=지난 4O년간 정치영역은 점차로 축소돼 왔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습니다. 제1공화국때는 국민들에게 영향력이 큰 지사형정치가가 많았었는데 지금은 행정·정보등에 능한 기능적정치가가 많습니다. 그만큼 정치의 고유영역을 다른데 빼앗기고 있다는 뜻이지요.
또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것은 사회·경제가 변화하게 되면 정치도 그 변화를 수용해 국민들에게 비전과 청사진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지적은 야당에게도 하고 싶은데 오늘의 야당이「민주화」라는 한가지 이슈만을 들고 큰 목소리로 국민들에게 어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변화에 따른 각계의 요구를 수렴해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이택=야당의 입장에서 동원할수 있는 인력및 자원등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야당만 30년을 해오다보니 여당해본 경험이 없는것도 이유중의 하나입니다. 제가 여기서 말씀드릴수 있는 것은 「민주화」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라는 것입니다.
▲이정=TV·신문등 「보이는 정치」가 점차로 그 중요성·신뢰성을 상실해 가고 「보이지 않는 정치」가 점차 증대해 간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습니다.
거의 모든 정치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결정되는 형국 아닙니까. 결정과정이 보이지 않는 정치 말입니다.

<한반도 긴장완화로 분단의 고착화 우려>
▲한=우리나라 정치의 고질적인 문제중의 하나는 자신의 도덕성을 따져보지 않고 상대방의 정치는 준열한 도덕의 자(척도)로 재려는 경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극단적인 도덕적 명분론 때문에 민주주의의 요청인 타협의 정치를 하기가 어렵게 돼요.
▲이정=우리 민족과업의 대명제로서의 분단극복을 위한 주체적 노력이랄까, 역량의 축적이란면에서 지닌 40년을 진단해 보는 것도 의의가 있을것같군요.
현재 한반도 통일을 둘러싼 제반상황은 2중으로 불리하다는 점을 먼저 들고 싶습니다.
대내적으로는 남북한의 군사적 대치상태가 날로 두터워지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주변 열강들이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강화해 현상유지정책을 펴고 있어 분단의 고착화가 진행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한=저는 그러한 분단고착화상태에서 우리가 최소한, 그리고 최초로 해야할것은 「분단 의식」의 극복에 있다고 봅니다.
분단이 위축된 분단의식을 조장하게 되어 우리는 분단 자체보다 오히려 분단의식에 의해 분단을 실감하고 있는 측면이 있음을 지적하고 싶군요.
따라서 분단의식의 극복은 곧 統ㅡ에의 의지를 향한 신념의 문제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이택=우리 정부의 통일정책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측 주장대로 남북회담을 통해 남북한 선거를 하려면 최소한 우리 국민들에게라도 우리 체제가 북한체제보다 우월하다는 확고한 신념을 불어넣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들은 자유를 강조하는 민주화의 상태에서 멀리 떨어져 있음을 부인할수 없고 부의 분배가 불공평한 경제 현실에 대해서도 회의를 품고 있지 않습니까.
제3공화국의 통일 논의는 7·4남북공동성명을 통해 구체화되었습니다만 공동성명을 발표한지 3개월만에 유신체제가 등장했습니다.
신기한 것은 우리측이 유신헌법을 발표하는 바로 그날 북한도 김일성을 주석으로 하는 쌔 헌법이 발표됐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양측헌법 모두에 약속한 듯이 「조국의 평화적 통일」이라는 문구가 들어갔죠.
이렇게 볼때 남북한 관계자는 서로 상대방을 적으로 몰면서도 동시에 그 적이 있으므로 얻게 되는 정권강화 필요성 때문에 「적대적 의존관계」라는 기묘한 상태가 됐어요.
▲이정=결국 한반도 통일 문제는 남북한 양측 모두의 집권자가 집권연장을 위해 통일을 이용하려는 사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데 기본적 전제를 확보해야 합니다.
북한에서 주장하는 것이 『남조선이 해방될 때까지는 김일성 독재를 참아 달라』고 북한 주민들에게 요구하는 것 아닙니까. 따라서 분단해결의 주체적 노력은 남북한 모두가 통일을 갈망하는 국민들에 의한 경선을 통해 통치자를 뽑고 양측통치 집단간의 협의를 거쳐 민족적 합의를 수렴하겠다는 자세에서 비롯돼야 할 것입니다.
▲한=88년까지의 2, 3년 간이 우리나라 정치사적으로 중요하다는 얘기가 많은데 나름대로 전망을 해보고 얘기를 끝맺는게 어떻겠습니까.
▲이정=현재와 같이 사회각층의 불만이 노출되고 그에 따른 정부의 강경반응이 언제까지 그 악순환을 이어갈지 모르겠지만 최소한의 바람은 88년에 집권당 내부에서 만이라도 정권교체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덕적 명분으로 타협의 정치 못해>
그보다 더 바람직한 것은 물론 다원화된 사화적 이해를 대변할수 있도록 정치제도가 개혁되어 사회의 여러가지 변화와 요구들에 대용해 나갈수 있게되는 여건이 구체화되는 것이겠지요.
현재 여야는 모두 호헌, 개헌을 주장하면서 직선이든 간선이든 「대통령중심제」에 집착하고 있는데 좀더 유연성 있는 자세를 기대하고 싶습니다.
대통령 중심제란 한 쪽이 모든것을 차지하고 다른쪽은 하나도 차지하지 못하는 「전부 아니면 전무」의 게임 아닙니까? 따라서 첨예한 정치적 충돌을 막고 다양한 이해관계가 공존할수 있는 「의원내각제」같은 제도도 좀 고려해 주었으면 하는 겁니다.
「의원내각제」라면 어느 정도 권력분산이 가능하고 공존과 타협의 정치가 이룩될수 있다고 봅니다.
▲이택=정치가의 타입이 해방직후의 「거인」(Giant)형에서 현재와 같은 「역군」이랄까 전문적「테크노크라트」형으로 바뀐것은 현재의 정치가 왜소화됐음을 의미합니다.
이말은 요즘 정치가들에게 정치철학이랄까 사상이 보기 힘들어 졌다는 뜻입니다.
요즘 정치가들은 정치생명을 연장하기에 급급해서 「살아남기 주의」가 팽배해 있어요.
연극이 끝났는데도 자기가 선 무대에서 내려오려 하지않고 소외되지 않겠다는 정치적 「연명술」이 횡행하고 있지요. 이러한 정치풍토 위에서는 앞날의 정치가 결코 순탄할것은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는것 아니겠습니까.
▲한=요즘 시국이 점차 사회적 긴장과 불안을 야기하는 이유는 아까 말한바대로 정치집단상호간에 지나친 자기주장만을 고집하는 폐쇄적 도덕논리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정치가들은 자기들만의 도덕률을 버리고 국민들이 불안감없이 운동장에서 게임을 보듯 정치게임을 해주면 좋겠습니다.
물론 게임률은 국민들의 합의에 따라 결정돼야겠죠.

<기록=기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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