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신성식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조현병 환자도 사람입니다

중앙일보

입력 2016.05.31 00:22

업데이트 2016.05.31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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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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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복지전문기자·논설위원

5475일-. 서울 관악구 김락우(51)씨가 정신분열증(조현병)을 앓은 기간이다.

30일 오후 그와 50분 통화했다. 조현병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논리정연했다. 소위 ‘정신 나간 것 같은’ 얘기는 한마디도 없었다. 김씨는 2000년 말 발병했다. 갑자기 무당이 보이고 굿소리가 들렸다. 하늘나라의 계시를 받고 세상을 구할 특별한 임무를 띤 것처럼 느꼈다. 환청·환시·환미(맛)·환후(냄새)·망상 등 조현병의 거의 모든 증세가 밀려왔다. 두 달 후 병원을 찾았고, 두 달 입원 후 퇴원했다. 한 달 반 만에 재발해 6개월 입원했다. 두 차례 재발·입원을 반복했다. 그렇게 4년이 흘렀다. 그 이후 외래진료를 계속 받았고 지금은 가끔 병원에 들를 정도로 호전됐다. 현재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표를 맡아 동료 환자 100여 명의 자조(自助) 모임을 이끌며 회복을 돕는다. 6년 사귄 여자친구와 곧 결혼할 계획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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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5475일 동안 한 번도 남을 해치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았다. 노숙인 같은 생활을 했어도 남한테 해를 끼친 적이 없다. 그에게 물었다. “그러면 강남역 사건은 어찌된 거냐.” 김씨는 “어느 집단이건 특이 성향을 지닌 소수가 있지 않느냐”고 항변한다. 살인자 중에는 조현병 환자만 있는 게 아니라 경찰도 있고 회사원·변호사도 있다는 거다. 강력범죄자 중 정신장애인은 0.6%에 지나지 않는다. 한두 명의 일탈행위자 때문에 전체가 ‘묻지마 범죄 집단’으로 몰렸다.

장애인은 사회적 약자다. 조현병을 비롯한 정신장애인은 약자 중의 약자다. 여느 유형의 장애인보다 일자리 구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50~60%가 기초수급자다. 재발 공포를 안고 산다. 별것 아닌 행동도 남들이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자신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해도 항의 한 번 못할 정도로 연약한 존재다. 명심해야 할 게 있다. 지금처럼 조현병 환자를 범죄자 취급을 하면 음지로 숨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본인도, 가족도 더 힘들어진다. 사회 복귀는 점점 멀어진다. 그런데도 경찰도, 새누리당도 여론에 편승해 “격리”를 외치고 있다.

모든 질병이 그렇듯 조현병도 초기 발견과 치료가 중요하다. 발병 초기 3년 동안 약물치료를 잘하면 김씨처럼 될 수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정신병원 반강제 입원 기간을 줄이고 공동생활가정·직업재활 등의 사회복귀시설로 가도록 유도해야 한다. 김씨의 마지막 당부다. “조현병 환자도 환자이기 이전에 사람입니다. 이웃입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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