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 재처리 완료 통보 파장] 배경과 전망

중앙일보

입력

북한이 핵 재처리를 지난달 30일 끝냈다고 미국에 통보함으로써 북핵 문제가 다시 급물살을 타게 됐다.

한.미 정보당국이 아직 핵 재처리의 결정적 물증인 크립톤 동위원소를 포착하지 못한 만큼 진위 확인은 필요하겠지만 핵 위기 지수가 한 단계 올라간 것은 분명하다. 그동안 핵 재처리를 거의 완료했다고 해온 북한이 날짜까지 넣어 재처리를 종료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를 핵 억제력 확보를 위해 사용할 것이라고도 했다. 재처리를 통해 얻은 플루토늄을 핵무기 제조로 돌리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 재처리 완료가 사실이면 파장은 클 수밖에 없다. 국제사회가 사실상 한계선(red line)으로 정한 기준을 북한이 완전히 무시한 것이다. 그런 만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문제로 북핵을 다룰 명분이 커졌다.

제네바 합의에 이어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도 백지화된다. 핵 재처리 여부는 비핵화 공동선언 파기의 잣대였다. 대북 경수로 공사도 중단될 가능성이 커졌다.

9.11 테러 이후 플루토늄을 비롯한 핵물질의 테러단체 유출에 촉각을 세워온 미국은 대북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이행에 박차를 가할 수도 있다. 북한의 이번 입장은 곧 "다량의 플루토늄을 손에 쥐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재처리 완료 입장 표명은 대미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고강도 벼랑끝 전술로 보인다.

향후 대화 형식과 관련해 자신들이 주장하는 선(先) 북.미 양자대화, 후(後) 다자대화 구도로 미국을 끌어들이려는 의도가 드러난다. 실제로 북한은 20분 간에 걸친 미국과의 비공식 접촉에서 북.미 양자대화에 강한 집착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핵 억제력 확보를 언급한 것은 북.미 양자대화가 성사되지 않으면 핵개발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확실한 물증이 포착되지 않은 재처리를 완료했다고 한 것이나 핵무기 제조가 아닌 핵억제력 확보를 언급하는 것은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 몸값을 올리려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북한의 재처리 완료 입장을 계기로 대북 정책을 재조정할 가능성이 있다. 재처리의 사실 여부를 다시 확인하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국방부 중심의 대북 강경파가 전면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미 신보수주의의 맥을 잇는 강경파들은 북핵 문제가 북한 체제에서 기인한다고 보는 만큼 북한을 붕괴시키려는 노력에 본격 착수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되면 한반도 정세는 크게 요동칠 전망이다. 미국의 강경 대응에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공식 선언하거나 핵 실험을 실시하는 등으로 상황을 악화시킬 가능성마저 생긴다.

하지만 북핵 문제의 대화를 통한 해결이 끝난 것은 아니다. 북.미간 중개역을 맡고 있는 중국이 현재 북한과 협상 중이기 때문이다.

12일 방북한 다이빙궈(戴秉國) 중국 외교부 부부장을 통해서다. 지난 3월초 첸치천(錢其琛)전 중국 부총리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하면서 북.미.중 3자회담이 성사된 적이 있는 만큼 戴부부장이 다시 다자대화를 끌어낼 수도 있다.

<북한의 최근 발언 일지>

▶1월 10일

핵확산금지조약(NTP) 탈퇴 선언.

▶4월 18일

"8천여개의 사용후 핵연료봉 재처리 작업까지 마지막 단계에서 성과적으로 진행되고 있다."(외무성 대변인)

▶4월 30일

"물리적 억제력을 갖추기로 결심."(외무성 대변인)

▶5월 12일

"조선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백지화됐다."(조선중앙통신 상보)

▶6월 6일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담보협정(핵안전협정)의 구속에서도 벗어난 지 오래다."(외무성 대변인)

▶6월 23일

"우리로 하여금 핵억제력을 강화하는 데로 힘있게 떠밀어 주고 있다."(조선중앙통신)

▶7월 1일

북, "우리의 전쟁억제력을 시험하지 말라."(평양방송)

▶7월 8일

북, 미국에 8천개 사용후 핵연료봉 재처리 완료 통보.
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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