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이라 부르시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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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재판장님, 김군이 교도관에 가려 보이지 않습니다. 교도관을 뒤로 앉혀주십시오.』
『변호인에게 말합니다. 시종일관 「군」이나 「학생」이라는 호칭을 쓰시는데 앞으로 「피고인」이라 부르십시오.』
『「군」이라는 호칭이 불법입니까.』
『불법이 아니라 부적당하다는 것입니다.』
『형사소송법상 어디에 부적당하다는 조항이 있습니까.』
『재판을 받고 있는이상 「피고인」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군」이라고 부르는 것은 변호인들의 최소한의 애정 표시입니다.』
『어쨌든 의도적으로 「군」으로 부르는 것은 삼가십시오.』
5일하오 2시5분쯤 미문화원사건 공판이 열린 서울형사지법 대법정.
김민석피고인에 대한 호칭을 놓고 재판장과 변호인이 한동안 입씨름을 벌였다.
「군」과 「피고인」.
사소하다면 사소한, 그러나 호칭 이상의 의미를 함축한 호칭시비. 그것은 바로 사건을 보는 재판부와 변호인단의 시각의 거리를 말해주고 있었다.
피고인의 호칭시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유신하 명동사건 공판때 모변호인이 피고석에 선 윤보선전대통령에게 「각하」라고 부르다 제지를 받은 일도 있고, 10·26사건 재판때는 김재규피고에게 「장군님」이라 칭하다 신문이 중단되기도 했었다. 우리 형사소송법의 어디에도 호칭에 대한 명문규정은 없다. 구미여러나라에서 확정판결전까지는 무죄라는 법정신에 따라 「씨」라고 경칭을 쓰는 것이 참고가 될뿐이다.
호칭부터 시작된 양쪽의 신경전은 재판이 진행되는동안 대목마다 불꽃으로 부딪쳤다.「광주학살」이라는 변호인의 인용에 재판부는 즉각 「광주사태」라고 정정했고 학생들은 「소위 광주사태」라고 응수했다.
같은 사물에 대해 전혀 다른 시각. 평행선의 거리는 흑과 백처럼 멀었다. <김용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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