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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성인 ADHD 환자도 국가·사회가 보살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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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면

|전문의 칼럼 서울대병원 소아정신과 김붕년 교수

필자에게 정기적인 치료와 상담을 받고 있는 김모씨는 43세의 성인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 환자다. ADHD로 치료를 받고 있는 초등학생 자녀를 위한 부모 상담을 받으러 왔다가 자신도 ADHD로 진단됐다. 평소 김씨는 직장에서 잦은 실수와 동료와의 갈등이 잦았고, 종종 화를 참지 못해 격하게 차를 몰아 접촉사고를 냈던 경험을 털어놨다.

|18세 전 환자에게만 보험급여 인정

ADHD는 소아청소년기 질환으로 알려져 있지만 성인이 된 후에야 진단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해외 통계 및 국내 성인 대상 조사에 따르면 성인 ADHD 유병률은 3~5% 수준이다. 소아청소년기 ADHD 환자의 약 절반 정도가 성인까지 증상이 이어진다. 평생 ADHD인 줄 모르고 살아가는 경우도 많다. 성인 ADHD 환자는 치료 가능한 질환이라는 점을 전혀 깨닫지 못한 채 삶에서 고통과 갈등을 겪고 있다는 얘기다. ADHD는 평생 정신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질환이라는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

성인 ADHD는 아동기에 비해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증상을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공통적인 특징은 시간과 물건 관리에 서툴다는 점이다. 특정한 일에 집중하지 못하다 보니 시간 내에 업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우울증·자살·중독·분노조절장애 발생 위험은 일반인의 3~10배 정도로 높아 심각한 정신장애를 겪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사회 적응이 쉽지 않다. 성인 ADHD 환자는 일반인에 비해 이직률이 높고, 소득 수준은 낮게 나타나는 경향을 보인다. 미국 하버드대 연구결과에 따르면 성인 ADHD 환자 1인당 연간 약 500만원(4336달러)에 달하는 업무 손실을 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성인 ADHD 환자 80% 이상이 우울·불안,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호소한다.

성인 ADHD도 전문의의 진단과 상담에 따라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상담을 병행하면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질환에 대한 인식 부족과 정신과에 가야 한다는 부담으로 치료 시기를 놓친다. 다행히 2013년에 성인 ADHD 진단 기준(DSM-5)이 마련됐고, 질환에 대한 인지도도 개선되고 있다.

하지만 ADHD의 약물치료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여전히 부족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ADHD 보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만 18세 이전에 확진된 환자에게만 보험급여가 인정된다. 미국·캐나다 등 의료 선진국과는 사뭇 다르다.

ADHD는 장기간에 걸친 치료를 요하는 질환이다. 환자에게만 경제적 부담을 지우는 것은 무리다. 정신과 질환에 대한 부정적 인식 속에서 오랜 기간 적잖은 비용을 부담하며 치료를 지속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왕성한 사회활동으로 국가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는 젊은이들이 ADHD로 인해 자신의 인생은 물론 사회에 나설 기회조차 잃어버리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미래가 있는 청년과 성인에게는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지금부터라도 성인 ADHD 환자의 미래를 위한 형평성 있는 치료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국가와 사회가 힘을 보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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