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거의 매일 WHO 기준 초과 ‘1급 발암물질’ 마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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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1호 6 면

서울을 비롯한 한국의 미세먼지 오염은 과연 어떤 수준일까. 최근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예일·컬럼비아대학 연구팀이 내놓은 환경성과지수(EPI) 보고서를 바탕으로 비교해 보면 다른 나라에 한참 뒤처져 있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한국의 대기오염은 최악이다.


지난 12일 WHO는 전 세계 103개국 3000여 개 도시의 미세먼지 오염도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중앙SUNDAY가 세계 96개국 수도의 초미세먼지(PM2.5) 연평균 오염도를 비교한 결과 서울은 연평균 24㎍/㎥로 중간 정도인 55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34개 OECD 회원국의 수도만 놓고 비교한 결과 서울은 30위를 기록했다. OECD 회원국 수도 중에서 서울보다 오염이 심한 곳은 터키 앙카라와 칠레 산티아고, 폴란드 바르샤바, 헝가리 부다페스트뿐이었다. 가장 깨끗한 뉴질랜드의 웰링턴은 6㎍/㎥로 서울의 4분의 1에 불과했다.


또 예일·컬럼비아대학에서 지난 16일 발표한 세계 각국의 EPI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평가는 80위였다. 하지만 대기오염 부문만 놓고 보면 180개국 중에서 173위에 머물렀다. 한국보다 대기오염이 심한 것으로 평가된 나라는 미얀마·파키스탄·라오스·인도·중국·방글라데시였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꼴찌였다. EPI 보고서는 예일대 등이 2년마다 각국의 환경오염과 환경정책 등을 평가해 내놓는다. 대기오염 부문에서 한국이 특히 낮은 평가를 받은 것은 대기오염 자체가 심한 것도 있지만 도시화가 많이 진행된 탓이다. WHO 기준을 초과하는 대기오염에 노출되는 인구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4년 전국 모든 측정소에서 얻은 연평균 미세먼지(PM10) 농도는 WHO 연평균 기준 20㎍/㎥를 초과했다. 한국인의 100%가 WHO 기준을 초과한 미세먼지를 마시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WHO는 미세먼지를 1급 발암물질로 정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영국 버밍엄대학 응용건강연구소의 닐 토머스 박사팀은 ‘암역학·생체표지·예방’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대기 중 미세먼지가 10㎍/㎥ 증가하면 어떤 형태든 암으로 사망할 확률이 22% 높아진다”고 밝혔다. 이 연구는 1998~2001년 홍콩에 거주하는 65세 이상 노인 6만6280명을 모집, 2011년까지 대기 중 미세먼지 농도와 함께 추적해 분석한 결과다.


국내에서도 미세먼지 오염으로 인한 건강 피해를 경고하는 연구 결과는 다양하다. 중앙SUNDAY가 입수한 ‘자동차 대기오염물질 노출 인구를 고려한 위해성 평가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시내에서는 도로변 미세먼지(PM10) 노출로 인해 월평균 1179명, 연간 1만4000여 명이 초과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 보고서는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에서 작성해 환경부 산하 ‘오토오일(Auto-Oil) 위원회’에 제출한 것으로 도로변 미세먼지 오염도와 유동 인구수를 바탕으로 초과 사망자를 추정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배현주 박사는 2014년 한국환경보건학회지에 게재한 논문에서 서울 지역 미세먼지(PM10) 농도가 10㎍/㎥ 증가하면 전체 사망률은 0.44%, 심혈관계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은 0.95% 증가한다고 밝혔다. 또 초미세먼지(PM2.5) 농도가 10㎍/㎥ 증가하면 전체 사망률은 0.76%, 심혈관계 질환 사망률은 1.63%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배 박사는 논문에서 “65세 이상 고령집단에서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로 인한 초과 사망 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2026년 65세 이상 인구비율이 20.8%로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서울 지역의 미세먼지나 초미세먼지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갈수록 커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고려대 이종태(환경보건학과) 교수 등이 지난해 국제학술지인 ‘환경연구(Environmental Research)’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미세먼지(PM10)가 10㎍/㎥ 증가할 때 서울 지역 초과사망률이 2002~2006년에는 0.16%였으나 2007~2011년엔 0.26%로 나타났다. 초미세먼지의 경우 0.35%에서 0.48%로 증가했다. 연구팀은 미세먼지의 독성이 강해졌을 가능성도 있고, 전체 대기오염도와 달리 개개인이 실제로 노출되는 오염도는 악화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으로 추정했다.


한편 유엔환경계획(UNEP)은 24일 내놓은 ‘대기오염 개선을 위한 실행(Actions of Air Quality)’ 보고서를 통해 각국 정부의 대기 개선 정책 현황을 평가했다. 한국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대기 질이 개선됐지만 석탄화력발전소, 중공업이 선도하는 경제성장, 자동차의 증가, 황사 등으로 인해 위협받고 있다”며 “한국은 환경 문제보다 경제를 우위에 두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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