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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자신을 사용하는 남자, 타인에게 의존하는 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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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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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
소설가

그 여성은 20대 초반에 결혼했다가 서른 살 전에 이혼했다. 이혼 후 마음을 돌보면서야 자신이 했던 결혼의 의미를 이해했다. 그것은 단지 아버지에서 남편으로 의존 대상을 바꾼 행위였다. 현실 속 남편이 마음속에 간직된 이상화된 남편 이미지에 미치지 못할 때마다 실망하거나 분노했다. 의존성 문제를 알아차리고 자립과 자율을 연습한 후 다음 남자를 만났을 때는 한결 편안한 애착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남편들이 아내에게 못되게 구는 이유도 의존성 때문이다. 일상생활의 많은 요소를 배우자에게 의존해야 하는 남자들은 헌신적인 노력으로 배우자를 구한 다음 최선을 다해 아내를 사용한다. 양말 한 짝, 라면 한 그릇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기에 아내가 집을 비우기만 해도 분노한다. 의존 대상을 잃을까 두려워 다양한 방식으로 통제하기도 한다. 가계부를 일일이 검사하거나, 외출 시 어디든 동행하려 하거나, 하루에 열 번쯤 전화하거나. 심리적으로 자립된 여성도 그런 남자와 살 수 없어 이혼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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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의 내면에 유아적 의존성이 남아 있는 이유는 유아기의 정서적 보살핌에 균열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른 시기부터 자기 자신을 만족 도구로 사용했기 때문에 내면에 자폐적 요소까지 형성된다. 대상과의 건강한 소통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이라도 운 좋게 사랑하는 역량이 풍부한 연인이나 배우자를 만난다면 그 사랑을 양분으로, 상대와 동일시하면서 심리적 성숙을 이룰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성인으로서의 자기사랑, 자기사용 방법을 새롭게 배워야 한다. 건강한 사랑은 남녀가 각각 의존성을 벗은 후에야 가능하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남자가 먼저 이혼을 요청하는 사례가 는다고 한다. 반가운 소식으로 들린다. 남성들도 의존성의 덫을 알아차리고 자립적 삶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싶다. 아전인수 격일지라도. 미디어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요리, 집안관리, 육아 등을 행하는 남자들을 미화하듯 방영한 의도는 애초에 여성 시청자를 위해서였겠지만 은연중 남자에게 자립적 삶에 대한 자각을 일깨운 듯하다. 가부장제에서 누리던 특권도 없는데 어깨에는 여전히 무거운 책임이 얹혀 있는 게 못마땅했을 수도 있다. 강연에서, 남자의 자립적 삶에 대해 이야기하자 한 젊은이가 물었다. “그래도 성의 문제는 혼자 해결할 수 없지 않습니까?” 욕동을 상징화하고 승화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성숙의 증표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답이 아닌 듯해 고개만 끄덕였다.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