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총장 "사우디 국왕과 담판, 독재자에게도 쓴소리" 스케일 다른 '정치적 리더십' 강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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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훈클럽 간담회서 ‘10년 업적 소개’ 모두발언만 30분
참석자 “단순 소회 이상…사람들이 모르는 업적 분명히 알려주려 하는 느낌”
“미얀마 민주화 열고, 이란 핵협상 물꼬…투철한 공직 정신으로 최대한 했다”
“다른 나라 정상들이 선거운동해주겠다고 하기도…유종의 미 거두는 게 바람직”

유가 문제로 사우디 국왕과 담판을 했다. 약자 편에 서서 독재자들에게 쓴소리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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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25일 관훈클럽 임원과의 간담회를 10년 간의 사무총장 임기를 되돌아보는 기회로도 삼았다. 난제에 부딪쳤던 경험 등을 소개하는 모두발언에만 30분 정도를 썼다. 한 참석자는 “단순히 임기를 마치며 밝히는 소회 이상이었다. 본인이 총장으로서 무엇을 이뤄냈는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것들을 분명히 알려주고 싶어한다는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반 총장은 총장으로서 다뤄야 했던 ‘역대급 위기’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발언을 시작했다. “40년 이상 유엔에서 근무하고 고위직까지 했던 인사에게 물어봤더니, 40년 동안 있었지만 내가 총장하는 동안 같은 일들이 생긴 건 처음이라고 하더라. 제 전임자보다 제가 몇 배 (일이)늘어난 것 아닌가 생각한다”면서다.

그러면서 반 총장은 ‘글로벌 4F(Financial·Food·Fuel·Flu) 위기’를 언급했다. 그는 “2007년에 임기를 시작했는데, 2008년 가을에 1929년 세계 대공황 이래로는 처음이라는 세계 경제 위기가 닥쳤다. 2~3년 뒤엔 유로존 위기가 생겼고, 역대 어느 총장보다 힘들었다”고 말했다. 또 “유가가 천정부지로 올라가서 이를 내리는 문제로 사우디 국왕과 담판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세계에서 생각할 수 있는 나쁜 일이 한꺼번에 몰아닥친 가운데 10년을 했다. 제 성격도 그렇지만, 한국에서 훈련된 공직에 대한 투철 정신을 최대한도로 하겠다는 생각으로, 10년간 마라톤을 해야 하는데 100m 뛰는 기분으로 계속 뛰었다”고도 말했다.

반 총장은 특히 미얀마 민주화 과정에서 본인의 역할을 강조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반 총장은 “나는 가능한 한 약자 편에 서서 독재자들에게 쓴소리를 하고, 강대국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얀마에 들어가 미얀마 민주화를 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미얀마 정부도 그걸 확실히 인정한다. 미얀마 정부가 어떤 세계 정상도 상·하원 양원에서 연설할 기회를 안줬는데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 노력해줘서 진심으로 고맙다’고 해서 나만 했다”고 설명했다.

반 총장은 지난해 타결된 이란 핵협상 타결과 관련해서도 “이란 핵문제 해법을 갖고 많은 논란도 있었다. 제가 이란에 가서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을 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당히 많은 반대가 있었다”며 “그럼에도 이란에 가서 물꼬를 터놨고, 몇 년에 걸친 협상 끝에 해결됐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돌아봤다.

지난해 말 파리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각국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공약하고 2020년 이후 신기후체제를 공식출범하기로 한 데 대해서는 “2009년에도 코펜하겐에서 (신기후체제 출범 합의를)시도했다 한 번 실패했다. 그 때는 여러 나라가 반대해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내가 해냈다”고 자부심을 보였다.

사무총장 업무에 대한 비판에도 방어막을 쳤다. 반 총장은 5년째 내전이 이어지고 있는 시리아 사태를 언급한 뒤 “절감한 것은 안보리가 우크라이나 문제서부터 사사건건 걸린다. 그런 데 대한 불만과 좌절감 등이 저에게 오다 보니 세크리터리 제너럴(Secretary-General·총장)을 스케이프고트(희생양·scapegoat)라고 이야기한다(※SG라는 약자가 똑같다는 뜻). 유엔에서 자주 쓰는 농담 겸 현실”이라고 소개했다.

‘반기문 대망론’에 대해 각국 정상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반 총장은 “제가 7개월 후 퇴임하면 무엇을 할 것이냐는 질문을 한국 내에서만 궁금해하는 게 아니라 많은 국가의 정상들이 많이 물어본다”며 “전부 (대권 도전 가능성을 제기한)신문을 봤다며 ‘많이 도와주겠다’, ‘선거운동해주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 관심이 국내에 더 가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저는 어디까지나 유엔 사무총장이고, 돌아온 뒤 국민으로서의 역할은 더 생각해보겠지만 지금 현재는 제가 맡은 소명을 성공적으로 맡고,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게 여러분들이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 총장의 발언을 직접 들은 참석자는 “약자를 보듬는 일반적인 유엔 사무총장의 이미지보다는 정치적 리더십과 결단력을 강조한 측면들이 돋보였다. 다른 대선주자와 비교했을 때 ‘난 스케일이 다르다’는 점도 부각하려 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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