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과 창업] 은행 자소서 5000자…‘끼’와 ‘깡’ 보여주는 사례 담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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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인사 담당자가 말하는 자소서의 조건 <상> 금융 부문

| 인문학 소양, 논리적 글쓰기는 기본
구체적 체험 담아 진솔함 보여줘야
“좋은 직원 되겠다”는 뻔한 다짐이나
동어 반복, 일관성 없는 내용 피해야

‘은행 자소서(자기소개서) 하나 완성하면 3년이 늙는다.’

시중은행 공채를 준비하는 취업준비생이 흔히 하는 이야기다. 은행 자소서를 신춘문예에 빗대서 ‘신한문예’, ‘국민문예’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만큼 시중은행 자소서의 항목이 까다롭고 채워야 할 분량이 많다는 뜻이다.

올 상반기 우리은행·신한은행 공채나 지난해 하반기 열린 국민은행·KEB하나은행 채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원자들은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 헤매거나 5000자나 되는 분량에 지치기도 했다. 주요 4개 시중은행(KEB하나·국민·우리·신한은행)의 인사부 채용 담당자에게 은행 자소서 항목에 담긴 의도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아울러 어떤 자소서가 채용담당자 눈에 잘 띄는지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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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자소서 항목을 살펴보면 은행이 뽑고자하는 인재상을 알 수 있다. 2014년과 2015년 공채에선 우리은행 자소서 3번 문항이 화제였다. ‘우리은행 영업점을 방문해보고 다른 시중은행과 비교하라’는 내용이었다. 올 상반기 개인금융 서비스직군 채용에선 이 문항이 사라졌다. 대신 ‘우리은행은 위비뱅크 등 창의적인 서비스로 변화를 주도한다. 창의적 사고를 바탕으로 이뤄낸 변화를 쓰라’로 바꿨다.

이에 대해 우리은행 이태영 인사부장은 “최근 은행권은 영업점보다는 스마트금융 같은 비대면 채널 비중이 커지는 상황이어서 올해 채용에선 창의적인 인재에 특히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4번에 추가된 ‘자신의 끼를 발산하거나 깡을 보여준 경험을 쓰라’도 비슷하다. 그는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도전하는 사람이 창의적인 인재라고 보기 때문에 끼와 깡에 대해 물었다”고 설명했다.

인문학은 은행 자소서의 단골 메뉴다. ‘본인을 나타내는 인문학 도서 속 인물을 소개하라’(국민은행 2015년 하반기), ‘귀하의 가치관 형성에 전환점이 된 인문/예술작품은 무엇인가’(KEB하나은행 2015년 하반기) 등이다. 이는 창의성과 동시에 소통능력을 평가하는 항목이다.

국민은행 채용 담당자는 “인문학 관련 항목은 소통·협업·창의력을 갖춘 통섭형 인재를 뽑기 위한 것”이라며 “지원자의 인문학적 소양과 함께 금융인으로서의 소명의식을 보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은행원은 다양한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인문학적인 기본 소양이 중요한 평가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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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단점과 해결책’을 요구하는 문항도 자주 등장한다. 올 상반기 신한은행 자소서엔 ‘신한은행 채용 브랜드의 강점과 약점을 기술하고 채용 브랜드 강화를 위한 아이디어를 제안하라’는 문항이 새롭게 등장했다. 이를 두고 ‘지원자들로부터 컨설팅을 받으려는 거냐’는 불평도 나왔다.

신한은행 인사부 박기홍 차장은 “그런 의도는 전혀 아니었다. 문제 해결 능력을 보기 위해 본인이 은행의 담당자라고 생각하고 접근해보라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만약 출제의도를 잘못 알고 컨설팅 아이디어를 내려고 하다보면 답변의 진솔성이 떨어지게 된다”고 덧붙였다.

각 은행은 최근 자소서 분량을 점점 줄여가는 추세다. 한때는 1만자 넘게 요구하기도 했지만 지원자의 원성이 높자 지금은 3000~5000자 정도로 줄었다. 하지만 국민은행은 글자 수 제한이 없는 항목을 두기도 했다.

은행 채용 담당자는 분량의 많고 적음은 평가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정해진 분량을 꼭 다 채우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신한은행 박기홍 차장은 “얼마나 소신을 가지고 전달력 있게 펼치는지가 중요하다. 길든 짧든 기승전결의 흐름을 가지고 접근하라”고 조언했다.

자기소개라는 취지에 맞게 자신의 구체적인 경험을 예로 들어 쓰는 게 좋다. 자소서엔 지원자가 어떤 경험을 통해 무엇을 느꼈는지를 쓰게 하는 항목이 많은 편이다. 이를 통해 지원자의 사고의 폭과 깊이를 보려는 의도가 담겼다. 따라서 ‘좋은 직원이 되겠습니다’와 같은 통상적인 문구는 무의미하다.

문체가 유려한지는 보지 않는다. 하지만 중언부언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답변은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 기본적인 걸 지키지 못해도 곤란하다. KEB하나은행 채용 담당자는 “항목 간 일관성이 크게 떨어지거나 다른 회사 이름을 써넣는 등 어이 없는 이유로 탈락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고 말했다.

직접 쓰지 않고 다른 이가 자소서를 대필한 경우는 설사 서류전형을 통과하더라도 면접에서 걸러진다. 보통 1차 실무면접은 자기소개서를 바탕으로 진행되는데 이때 본인이 작성했는지 아닌지가 드러난다. 직접 작성하지 않았다면 금융인으로서의 기본적인 도덕성과 윤리 면에서 매우 큰 감점 요인이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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