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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삼면초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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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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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힐러리 클린턴(사진) 전 국무장관이 공화당 대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의 상승세, 경쟁자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주)의 버티기, 미 연방수사국(FBI)의 표적 수사란 ‘3중고’로 위기를 겪고 있다.

최근 트럼프 상승세, 샌더스 버티기
FBI 정치자금 표적 수사 시련 겹쳐
슬로건 ‘함께 해야 강하다’로 수정
“불량배가 대통령 되면 미국 파산”
강공 전략으로 위기 돌파 시도

지난주 19일부터 22일에 걸쳐 발표된 5곳의 여론조사 중 클린턴은 3곳에서 트럼프에 뒤지는 것으로 나왔다. 이달 초 트럼프에 지는 조사 결과가 처음 나올 때까지만 해도 고개를 갸웃했던 이들도 이제는 “트럼프가 이길 공산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 시작했다. 아무리 트럼프가 여성·소수인종 폄하 발언을 쏟아내도 클린턴과 트럼프의 비호감도는 같게 나오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클린턴은 본선을 겨냥한 전략 수정에 나서고 있다. 당장 선거 슬로건을 교체했다. 경선 기간 내내 내세웠던 ‘I’m With Her(나는 그녀를 지지한다)’ 대신 트럼프와 맞붙을 본선용 슬로건으로 ‘Stronger Together(함께 해야 강하다)’를 택했다.

경선 중에는 ‘최초의 여성대통령’을 부각시키는 전략이었지만 이것만으로는 트럼프의 ‘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란 강렬한 메시지에 대적하기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트럼프에 대해서도 “연단에 선 불량배(a bully in the pulpit)”,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이 파산한다” 등 표현이 거칠어졌다.

클린턴의 주적이 트럼프라면 내부의 적은 집요한 클린턴 비방 공세를 펼치는 샌더스다. 샌더스는 23일 AP와의 인터뷰에서 “(7월 말의) 전당대회는 지저분해(messy)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순순히 클린턴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고 민주당의 폐쇄적인 경선 규정의 문제점 등을 끝까지 추궁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예컨대 “워싱턴주에서 73%의 지지율로 압도적 승리를 거뒀지만 워싱턴주의 수퍼대의원(경선 결과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투표하는 주지사·상원의원 등 당 고위 간부) 10명이 모두 클린턴 진영에 줄을 서는 건 민주주의가 아니다”란 주장이다. 일각에선 “이러다 샌더스가 무소속으로 독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내놓고 있다.

진보 온라인 매체인 살롱은 지난 21일 “클린턴이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샌더스를 지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클린턴이 본선에서 힘겨운 싸움이 예상되는 만큼 트럼프를 이기려면 진보 지지층을 결집시켜야 하는데 이를 해낼 사람으로 샌더스만한 인물이 없다는 설명이다. 샌더스로서도 클린턴이 당선되면 부통령으로서 자신의 진보 정책을 펼 수 있어 윈-윈이 될 것이라고 살롱은 분석했다.

미 여론 조사기관 라스무센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자들 중 클린턴이 샌더스를 러닝메이트로 지명해야 한다는 비율은 36%에 달했다. 이는 19%로 2위를 차지한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매사추세츠주)의 배 수준이다.

트럼프와 샌더스가 ‘눈에 보이는 적’이라면 FBI는 암투의 상대다.

CNN은 이날 클린턴의 최측근인 테리 매컬리프 버지니아 주지사가 불법적으로 정치자금 기부를 받았다는 의혹을 FBI가 수사 중이라고 전했다. 매컬리프 주지사는 클린턴 부부가 가장 신뢰하는 인사로 ‘클린턴 재단’의 핵심 멤버이기도 했다. 현재 한국·일본이 ‘클린턴 대통령’에 대비해 공을 들이는 인사이기도 하다.

현재 FBI는 클린턴 후보의 e메일 스캔들에 대해 수사를 진행 중이다. FBI내부가 워낙 입장이 강경해 클린턴 캠프와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때문에 이번 FBI의 매컬리프 수사가 일종의 ‘클린턴 목조르기’의 성격을 띄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상황에 따라선 ‘클린턴 재단’의 자금 문제로 불똥이 튈 수도 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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