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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유석 판사의 일상有感

미래를 위한 아예 새로운 질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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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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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판사·『개인주의자 선언』 저자

알파고 이후 쏟아져 나오는 인류 미래에 관한 경고들은 비슷비슷하다. 과학기술의 지수적 성장, 인간을 따라잡는 인공지능, 인간 대부분이 잉여인력으로 전락, 극소수가 지배하는 세계. 묵시록에 가까운 거창한 예언들이 넘쳐나는 데 비해 대안으로 제안하는 것은 단출하다. 기본소득제 정도. 노동자는 곧 소비자이기도 하므로 인간 노동 대부분이 불필요하게 되어 고용이 없어지면 생산해도 소비할 구매력이 없어 시장 자체가 붕괴한다. 그러니 세금으로 기본소득을 나눠주자는 것. 그런데 기본소득이란 말 그대로 기본적인 출발점에 불과한 것 아닌가. 과연 그것만으로 인간들이 자존감을 유지하며 창조와 혁신을 이어가는 에너지 넘치는 삶, 주체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살려는 드릴 게’ 같은 소리 아닌지.

질문 자체가 현재의 관념에 갇혀 있기 때문 아닐까? 일자리, 생산, 가치에 관한 전통적인 관념으로만 보니 ‘인간이 필요 없는 세상’이라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다. ‘아예 새로운 질문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인류는 늘 한 시대가 한계에 봉착하면 아예 새로운 세상의 법칙을 만들어내곤 했다. 온 나라가 왕의 소유이던 오랜 세월을 끝내고 자유로운 시민들의 공화국을 만들었고, 자유 경쟁에 따라 각자 생존하는 것이 당연하던 시대가 극심한 문제를 낳자 국가가 국민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것이 당연한 복지국가를 만들었다. 말하자면 사회계약은 늘 새롭게 바뀌며 갱신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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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요즘 유행하는 ‘멍때리기 대회’라고 생각하고 곧 치열하게 논의될 새로운 어젠다들을 맘대로 상상해보자. ‘기계가 못하는 것들에 인간의 가치가 있다’ ‘소비가 생산보다 더 가치 있는 행위다. 갈수록 싸고 쉬워지는 생산은 기계에 맡기고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욕구를 창조해야 한다’ ‘상상하는 능력이야말로 최대의 재능이다’ ‘놀이야말로 가장 높은 수준의 일이다’ ‘과학기술은 인류 역사의 산물이니 모든 인간에게 생래적 공유 지분이 있다’ ‘소유권은 재정의되어야 한다’ ‘클라우드 형태의 사용권, 접근권에 기반한 경제’ ‘인간의 행복감을 뇌과학적으로 측정하여 새로운 가격과 화폐, 국정 지표로 삼자’. 무궁무진하다.

4차 산업혁명기의 변화는 인류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속도 자체가 핵심적 차이다. 우리 아이들은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살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정치가들은, 우리의 예술가들은, 우리의 교육자들은, 우리의 언론인들은, 그리고 우리 시민들 자신은 지금 도대체 무엇을 붙잡고 죽자고 씨름하고 있는 것인가.

문유석 판사·『개인주의자 선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