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반한 그 스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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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0호 30면

부처님 오신 날 행사가 오월의 밝은 햇살처럼 눈부시게 지나가고, 스님들은 부랴부랴 짐을 꾸린다. 석 달간 수행하는 하안거(夏安居)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참선하는 선원, 경전 보는 강원, 계율 공부하는 율원, 전국의 기도도량 할 것 없이 대부분의 승려가 100일간 안거에 들어간다. 짐 꾸리는 도반을 보며 문득 첫 안거 때가 떠올랐다. 혼자 피식 웃었더니 도반이 사연을 묻는다. “딴 게 아니고, 그때 내가 입승스님한테 엄청 반했었거든요. 세상에 그렇게 멋있는 스님이 있는 줄 몰랐어요. 그것도 비구니 스님한테.” 도반이 눈을 한번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그 사람이 누군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혀를 찼다. “쯧쯧, 그 스님한테 반한 스님이 한 둘이 아니지 아마.”


정말 그랬다. 내원사 선원, 무탈하게 살기를 기도한 후 드디어 첫 입선(入禪)시간. 전체 대중 가운데 막내였던 나는 가운데 줄 첫 번째, 불상의 눈길이 꽂히는 그 자리, 입승스님 코앞에 앉았다. 입승(立繩)은 기강을 바로잡고 대중을 통솔하는 소임이다. 키가 훤칠하고 얼굴이 단정하게 생긴 스님이 들어오더니 갑자기 눈앞에서 결가부좌를 하고 앉는 거다. 선원 스님들은 평균 8시간 이상을 앉아야 하니까, 보통은 반가부좌만 한 채 좌선을 하는데 결가부좌라니. 긴 다리로 양 다리를 척척 꼬아서 반듯이 앉는 모습이 마치 부처님께서 앉아계신 듯 했다. 허걱, 숨이 막혔다. 마침내 입승스님의 죽비소리가 큰방 가득 울려 퍼지고 대중은 일제히 좌선에 들어갔다. 그런데 나는 엉뚱하게도 심장이 어찌나 쿵쾅거리던지, 스님들이 내 심장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 아닐까 걱정했다.


한 시간이 훌쩍 지나고 다시 죽비가 울렸다. 한 시간에 한 번씩 일어나 마당을 도는 포행시간이다. 입승스님이 앞장서고 대중이 그 뒤를 따랐다. ‘아니, 이건 또 뭐지? 광목 풀옷을 빳빳하게 입고 죽비를 한쪽 어깨에 걸친 채 근엄하게 걷는 모습이라니. 우와~’ 괴로웠을 첫 철, 이렇게 멋진 입승스님 덕분에 나는 행복했다. 스님의 멋은 계속되었다. 새벽 4시 예불을 올리고 다시 입선, 아침공양(식사)은 6시다. 공양 전, 운무가 자욱한 마당에 누군가 유유히 걷는다. 딱 봐도 입승스님이다. 운무에 가려 발은 보이지도 않는다. 스님은 단지 걸었을 뿐인데, 고고하게 떠다니는 스님의 모습을 보며 ‘폼생폼사’가 저런 거구나 싶었다. 생각해보니 당시에는 멋진 스님이 많았다. 어떤 스님은 산에 올라 가슴에 품고 온 심오한 철학책을 읽기도 했다. 그 또한 멋스러웠다.


아, 내가 반한 그 스님들은 이제 더 이상 그 옛날의 ‘폼생폼사’가 아닐지 모른다.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지금쯤 허리도 약간 꾸부정하고 결가부좌도 힘들다 하시겠지. 하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멋진 출가자의 폼을 그대로 지녔으리라. 하여 오늘은 나도 광목 좀 빳빳하게 입고 나가볼까 한다. 『자유론』 한 권쯤 서가에서 빼 들고.


원영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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