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백색유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세기의 작곡가 「스트라빈스키」는 유행의 속도를 「마하3」으로 비유한 일이 있었다. F-15 전투기보다도 빠르다.
마치 그 속도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요즘 일본의 백색 선풍은 한국에도 상륙했다. 우선 여성들의 백색 패션이 물결을 이루고 있다.
흰 옷은 특히 한국인에겐 낯설지 않다. 백의민족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육당(최남선)의 설명에 따르면 수천년전의 부여사람, 신라·고려·조선의 모든 왕대들이 한결같이 흰 옷을 즐겨 입었다.
그 유래는 「태양의 광명」, 「신성」 등에서 찾고 있다.
인류의 색채사를 보면 태초의 생활색은 백과 흑이었다. 눈(설)과 흙의 빛깔과 같다.
그 다음에 나타난 색이 태양빛(적), 여기서 황·녹·청으로 발전했다.
고대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점성술에서 별빛을 적·황·흑·백으로 구분했다.
이집트 사람들에겐 「성색」이 따로 있다. 백·녹·담홍·심홍. 사원의 탑은 예외없이 백색인데, 그것은 태양, 현세, 생명의 기쁨을 상징했다.
동양의 성색은 5세기 무렵부터 흑백으로 나타났다. 승려의 의례복색깔이 그랬다. 백은 광명, 순결무구, 희열, 행복의 상징이었다. 흑은 그 반대.
색채가 그림(회화)의 세계에 군림하면서 「컬러 하머니」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여기엔 세가지 패턴이 있다.
첫째는 동일의 조화(아이덴티티), 둘째는 유사의 조화(시밀래리티), 세째는 대립의 조화(콘트라스트). 때로는 「모호의 조화」(앱비규이티)를 하나 더 꼽는 화가도 있다.
이런 컬러 디자인으로 이루어지는 미도(M=aesthetic measure)는 도식으로 설명된다. M=O/C. 「O」는 실서성, 「C」는 복잡성. 이 도식에 따르면 「어지러움(복잡성) 속의 통일」이라는 미학도 가능하다.
어쨌든 색채의 세계에서도 하머니는 중요하다. 여기에도 상징이 있다.
중세유럽에서 전해 내려오는 풍습으로 「백+청」은 행복한 사랑의 추억, 「백+연」은 아름다운 여성의 순결한 사랑, 「백+흑」은 고통스런 추억, 「적+녹」은 열정, 「황+연」은 영광.
스웨덴의 전원주택들이 청 혹은 녹의 지붕에 백색벽을 하고 있는 것은 여간 인상적인 풍경이 아니다. 따져 보면 그 나름의 뜻이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시조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는 구절이 생각난다. 이 경우의 백색은 순결이다.
동양의 색채 심벌은 풍수지리에도 잘 나타나 있다. 「동=청룡=청·청춘」, 「서=백호=백·백추」, 「남=주작=적·주하」, 「북=현무=흑·현동」.
백색 유행은 어디로 보나 기괴망측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유행은 바보가 만들고, 추종은 현명한 사람이 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다만 「백색 유행」과 「순결 유행」이 일치하지 않는 것은 유감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