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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달러 강세정책 대소견제가 목적|하락세로 돌아섰지만 폭락은 없을 듯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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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일본 엔화값이 점차 올라가더니 10일에는 1달러에 2백44엔대에 이르렀다. 지난 7개월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미달러 값이 서서히 떨어지고 있다. 어쩌면 금년 말에 달러화 폭락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비관론마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달러가 그렇게 쉽사리 급낙세로 돌아서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더욱 우세하다. 달러값이 한 고개를 넘어선 것은 사실이나 결코 더이상 내리막길을 걷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은 환율로 무역정책을 조정하고 또 일정한 액수만큼 달러가 계속 흘러 들어오도록 해야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배경에는 그냥 넘겨버릴수만도 없는 국제정치적·군사적 역학관계가 얽혀있다.
「스트롱아메리카」의 기치를 내건 「레이건」대통령이 계속 달러강세정책을 밀어붙인다면 달러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소련을 코너에 몰아넣어 그들의 군비확장정책을 포기하게 만들 것이다.
물론 소련경제권에 매달리고 있는 그 위성국들도 미국에 발목이 잡히게 될 것이다.
물론 미국이 달러정책을 잘못 연출할 경우 소련으로부터 역습을 당할 여러가지 요인도 있다.
소련의 경제력은 미국의 3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서방측과 맞먹는 군사력을 유지하려면 그만큼 국민생활을 희생시키지 않을 수 없게끔 되어있다.
세계의 분쟁지역에서 팽창정책을 펴고있는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은 달러와 기술제공 제한 등 유효한 경제정책을 채택하는 것이 효과가 있다고 생각해왔다.
세금을 줄이고 예산을 깍고 돈줄을 죄는 이른바 「레이거노믹스」를 떠받쳐 주는 것은 달러의 높은 신용도에 있었다. 해외에서 달러가 들어와 미군사비 증대에 따른 재정적자를 메워주기도 했다.
세계 전체로 보자면 달러공급량이 줄어들어 경제력이 약한 소련의 힘이 딸릴 수 밖에 없다.
소련이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은 사우디아라비아 못지않게 생산량이 많은 석유를 팔거나 금과 무기를 세계시장에 내놓는 것이다.
소련의 석유전략은 2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 서방국가에 석유를 날아 달러를 받고, 다른 한편으로 공산권국가에 싼값으로 석유를 넘겨주어 동헐지배체제의 기초로 리더십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석유가격이 계속 떨어지면서 소련입장이 매우 난처해졌다.
안으로는 대동구권 석유판매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싼 꼴이 되어 위성국가들이 소련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고 있으며 작년 6월에는 그러한 분위기가 더욱 확대되어 코메콘 (동구상호경제원조회의) 회의에서 상호간에 대립의 양상이 나타나기까지 했다. 달러부족으로 더욱 심각해진 소련은 박리다매전략으로 서방시장에 원유를 팔았다.
소련은 남아연방과 함께 세계2대 금생산국이다. 남아연방의 생산량이 연6백64t, 소련은 3백49t. 소련의 금매각은 세계 금시세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항상 국제금융계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고 있다. 소련이 곡물생산이 부진하면 달러를 조달하기 위해 서방시장에 금을 매각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가 됐다. 그렇다고 해서 소련이 미국의 달러 전략에 지배만 당하고 있지는 않다.
첫째로 소련은 대산유국으로서 세계의 인플레에 방아쇠를 잡아당길 수 있는 힘이 있으며 이에 따라 달러가치도 떨어뜨릴 수 있다. 지난 73년 제1차 오일쇼크가 소련의 책략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관측이 여전히 나돌고 있다.
둘째로 소련은 중동산유국의 강경파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오일쇼크나 逆오일쇼크(석유가격하락)를 연출, 석유가격의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석유수입국으로 전락한 미국이 달러정책을 잘못 쓰면 소련에 물릴 위험이 있다.
세째로 소련이 중동산유국에 무기를 수출하고 그 댓가로 석유를 수입하여 이 석유를 다시 동구권에 공급하는 방법을 채택함으로써 미달러화를 전혀 쓰지 않는 방법이 있다.
미국이 지난 80년 대소 곡물수출을 금지한 이후 어떤 현상이 나타났는가. 달러가 부족했던 당초에는 소련이 어려움을 당했다. 그러면서도 곡물수입의 다원화를 서두른 결과 소련의 대미의존도는 지난 78년의 74%에서 83년에는 19%로 뚝 떨어졌다. 식량을 무기화했던 미국의 곡물전략은 아이로니컬하게도 미국의 세계시장 지배력을 약화시켰으며 국내적으로는 공급과잉으로 농민들의 불만이 고조되어 있다.
미국이 달러강세정책으로 소련을 곤경에 빠뜨리는 것도 결국 한계가 있음이 드러났다.
동경의 정제전문가들은 대부분 달러값이 큰 폭으로 떨어지지 않으리라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미국이 채무국으로 전락하고 국내에 인플레 심리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에 달러가격이 어느 정도 내려간다 하더라도 그 폭이 크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다.
「레이건」대통령의 달러정책 기조가 어떻게 달라지느냐에 따라 동서간의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관계에 큰 변수로 작용할 것임이 분명하다. <동경=최철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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