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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개와 고양이는 안녕하신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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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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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카 피어스
생명윤리학자

미국에서 반려동물의 수가 급증하고 있다. 1970년대 중반부터 가파르게 늘어나 지금은 미국 인구와 맞먹을 정도다. 소득이 늘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진화한 결과다. 이제 개와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은 당당한 가족의 일원이다. 토끼·쥐·도마뱀은 물론 뱀까지도 반려동물 범주에 들어간다. 유기농 사료를 먹고 일급 수의사들에게 진찰받는 호사도 누린다.

반려동물 인간만큼 섬세한 존재
이런 사실 무시한 채 마구잡이 길러
아무리 잘 해 줘도 ‘통제 속 박탈’
반려동물 수 대폭 줄이는 용단 필요

나 또한 반려동물 급증에 기여했다. 개·고양이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엄마가 된 뒤엔 딸이 사달라는 대로 반려동물을 사줬다.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자 집은 ‘미니 동물원’이 됐다. 딸이 10대가 되면서 반려동물 수를 대폭 줄였지만 지금도 개 2마리와 살고 있다. 내게 반려동물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반려동물이란 개념은 내게 점점 불편하게 느껴진다. 심리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동물들이 믿기 힘들 만큼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갖고 있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금붕어조차 생각보다 똑똑하고, 고통을 느낄 줄 알며, 복잡한 행동양식을 보여준다. 어항 속에서 헤엄치는 금붕어를 볼 때마다 인간이 이들을 끝없는 지루함 속에 가두고 있다는 생각에 괴로워진다.

테네시대의 생태학자 고든 버가트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이 반려동물에게 아무리 잘 해 줘도 ‘통제 속 박탈’에 불과하다. 도마뱀을 사서 수족관에 보금자리를 만들어 준 적이 있다. 그런데 수족관 유리엔 항상 발톱으로 긁은 자국이 있었다. 좁은 장소에 갇힌 스트레스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다는 걸 깨닫고 가슴이 아팠다. 도마뱀이 2년 만에 숨진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이렇게 넓은 공간이 필요한 동물을 좁은 공간에 가두고 기르는 사람이 많다. 큰 잘못이다. 좁은 공간은 ‘서식지’로 불릴 자격이 없다. 요즘엔 ‘나노 탱크’라 불리는 초소형 수족관이 유행이다. 책상 옆 구석에 쏙 들어가는 사이즈 덕에 불티나게 팔리지만 그 안의 물고기는 6컵 분량의 물 속에서 평생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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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반려동물들은 언제라도 버릴 수 있는 싸구려 장난감이나 다름없다. ‘은둔자’란 별명이 붙은 소라게는 단돈 20달러면 살 수 있다. 하지만 이 작은 게가 정상적으로 살려면 10갤런의 물이 들어가는 대형 수족관이 필요하다. 그보다 작은 공간에 갇히면 번식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모른 채 소라게를 조그만 어항에 집어넣기 일쑤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반려동물인 개와 고양이로 넘어가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고양이와 개는 수천 년 넘게 인간과 함께 살았다. 그래서 인간과 깊은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다. 종이 다르다는 장벽이 있긴 하지만 자신이 필요한 게 뭔지 인간에게 표현할 수 있다. 인간 역시 이들에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 그럼에도 개와 고양이들은 인간에게 학대받고 버려지는 고통을 받고 있다. 수백만 마리의 개와 고양이가 유기동물 보호센터에서 자신을 버린 주인을 기다리다 생명을 빼앗기곤 한다. 개와 고양이를 정성껏 보살피는 사람조차 이들에게 필요한 걸 항상 제공해 주진 못한다. 개와 고양이는 인간이 깨닫지 못하는 차원에서 고통을 겪고 있을 공산이 큰 것이다.

한번 생각해 보자. 집안에서 귀염둥이 대접을 받지만 주인이 한 번도 산책을 시키지 않아 바깥 세상을 구경조차 못 하는 개들이 무수히 많지 않은가? 주인이 나가 있는 동안 집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며 스트레스를 받는 개들도 허다하다. 어떤 주인들은 도우미를 고용해 개를 산책시키게끔 한다. 그럼에도 하루 30분가량 밖에 나갈 기회를 얻을 뿐 대부분의 시간은 집에 갇힌 채로 지내는 개가 많다. 이들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지적은 지나친 것일까?

개와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은 사랑만 줘선 안 된다. 이들이 고통받지 않고 지낼 공간과 환경을 마련해 주고 시간을 내서 산책을 시키는 노력도 해야 한다. 무엇보다 마음속에 자신의 삶을 동물과 함께 하겠다는 다짐이 있어야 한다. 반려동물을 키우겠다는 결정은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니다. 때로는 키우지 않겠다는 결정이 가장 책임 있는 자세인 경우도 많다. 우리가 개와 고양이를 마구잡이로 사들여 기르는 행위를 중단하면 유기동물 보호센터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동물의 숫자도 줄어들기 시작할 것이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데 이런 소리를 하느냐고 항의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TV 광고는 금발 어린이가 털북숭이 강아지와 장난치는 모습을 끊임없이 내보낸다. 인터넷에도 귀여운 고양이의 애교를 찍은 동영상이 넘쳐난다. 이런 것들만 보면 반려동물 키우기의 즐거움만이 연상될 것이다.

그러나 진정 동물을 배려하고 싶다면 TV나 인터넷에서 눈을 돌려 인간이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방식을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 동물은 장난감이 아니다. 살아 숨쉬고, 인간처럼 감정도 느끼는 복잡한 생명체다. 동물의 입장에서 반려동물로 사는 게 어떤 의미인지 상상해 보자. 아마도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많을 것이다.

제시카 피어스 생명윤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