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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과장·서기관의 ‘원맨 쇼’인 한국의 저출산 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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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8일 ‘일본 1억 총활약 플랜’을 야심 차게 공개했다. 비정규직 처우 개선, 최저임금 인상, 출산율 제고, 고령자 요양 확보 등의 저출산·고령화 대책을 총망라하고 있다. 핵심은 최대 골칫거리인 보육시설 확보다. 2만3000명의 대기 아동을 줄이기 위해 내년까지 50만 명 규모의 보육시설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출산율을 1.42에서 1.8로 올려 50년 후에 인구 1억 명(지난해 말 1억2688만 명)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일본 아베 총리 ‘인구 1억’ 진두 지휘
한국은 총대 멘 지도자 어디에도 없어
인구전담부처나 상설사무국 신설해야

아베 총리는 저출산 문제 해결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올려놓고 있다. ‘인구 감소=국가 위기’라는 인식이 세계 어느 지도자보다 확고하다. 지난해 9월 ‘1억 총활약상’이라는 장관직을 신설하고 초대 장관에 최측근 인사를 임명했다. 일본은 한국보다 저출산 정책을 10년 이른 1995년에 시작했다. 이 덕분에 출산율이 1.42로 한국(1.24)보다 높다. 한국은 15년째 초저출산(1.3 이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일본은 2005년 3년 만에 탈출했다. 전체 인구도 한국의 2.5배에 달한다.

그런데도 위기의식은 상상을 초월한다. 아베 총리는 18일 “위기에 빠지기 전 우리가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며 결의를 다졌다. 아베 총리는 틈만 나면 ‘1억 총활약’과 인구 위기를 강조한다. 그가 군 위안부를 비롯한 과거사 문제에선 퇴행적 행태를 보이지만 국가 장래를 보고 이끌어 나가는 모습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 대목에서 한반도로 눈을 돌리면 한숨부터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지난해 두 차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주재했고, 올 4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일·가정 양립의 중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몇 번 되지 않기도 하지만 목소리도 왠지 공허하다. 행정부를 향해 회초리를 든 느낌도, 말고삐를 죄는 듯한 느낌도 들지 않는다. 의례적인 언급이랄까. 정치권은 어떤가. 여든 야든 자기 정치에 매몰돼 저출산 문제에 총대를 메는 지도자가 없다. 말로만 출산 장려를 외칠 뿐 정책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제대로 챙기는 데가 없다. 주무부처인 복지부 장관은 좌판처럼 널려 있는 각종 현안에 묻혀 저출산 문제를 진득하게 챙길 겨를이 없다. 웬만한 대책은 지난해 12월 발표한 3차 저출산 대책에 들어 있다. 절도 있게,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것만 남았다.

그런데 복지부 과장·서기관 두 명이 170개 과제를 챙기고 있다. 신혼부부 주택에다 청년 고용 등 복지부가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는 정책까지 ‘원맨 쇼’를 하고 있다. 정부 전체를 아우르는 총리실은 도대체 뭘 하는지 모를 일이다. 한 해 저출산 극복에 21조원을 쓴다면서 제대로 챙기는 데가 없다. 일본에는 1억 총활약상을 보좌하는 사무국이 총리실 산하에 설치돼 있다. 한국도 인구 전담 부처를 신설하든지, 사회보장위원회처럼 상설 사무국을 만들든지 무슨 수라도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