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시’가 남용되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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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우리말 존칭 완전히 망가지셨습니다’는 제목으로 “커피 나오셨습니다” 등과 같은 소위 ‘사물 존대’ 또는 ‘접대 경어’에 대해 다룬 적이 있다.

이런 표현에 이어 사람에게도 지나친 존칭을 사용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바쁘신 분임에도 불구하시고 대외 활동도 많이 하시고 좋은 일도 많이 하시고 계시다”처럼 ‘시’를 과도하게 쓰는 경우다.

객관적으로 삼자에게 얘기할 때는 “바쁘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대외 활동도 많이 하고 좋은 일도 많이 하고 있다”고 해도 그 사람에 대한 예의는 충분히 표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듣는 사람을 배려한 것이기도 하다.

기형적 존대 표현이 만연하다 보니 일반인은 물론이고 TV 토론 프로그램의 일부 대담자(패널)까지 지나치게 존칭을 사용함으로써 시청자들의 언어 사용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일도 발생한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분이 평소에도 불만이 많으셨는데 이번 일이 생기면서 순간적으로 폭발하셔서 사고를 치신 것으로 보인다”처럼 불필요하게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특히 사고를 친 사람이라면 객관적으로 얘기할 때는 굳이 존댓말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이 사람이 평소에도 불만이 많았는데 이번 일이 생기면서 순간적으로 폭발해 사고를 친 것으로 보인다”고 해도 큰 문제가 없다. 무죄추정 원칙으로 조금이라도 그를 배려한다면 ‘이 사람이’를 ‘이분이’로만 해도 충분하다.

과도한 존칭 사용은 우리말 어법을 파괴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듣는 이를 거북하게 만드는 일이다.  

배상복 기자 sb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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