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기념식서 유족들에 쫓겨난 박승춘…"제창불허 독단 결정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기사 이미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18일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5ㆍ18 민주화운동 36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려다 5ㆍ18 유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허용하지 않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18일 유족들의 반발로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장에 입장하지 못하고 쫓겨났다.

5·18 국가기념식 주관 책임자인 박 처장은 이날 오전 10시 광주 망월동 국립묘지에서 거행된 36주년 5·18 기념식장에 입장하려고 했으나 일부 유가족들이 막아서면서 행사장 1열에 마련된 좌석에 앉지 못했다. 이날 행사장은 지정석으로 운영됐다. 5·18 유가족 대표들은 미리 와 '국가보훈처장'이라고 박 처장의 지정석에 붙어 있던 스티커를 떼어냈다. 보훈처장 좌석 바로 뒤에 앉아 있던 경찰 관계자에게 "왜 우리 자리에 당신이 앉아 있느냐"며 몰아낸 뒤 자신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여기만 잘 지켜. 우리 아들은 고등학교 1학년 17살 먹은 놈이 죽었어. 도청에서 폭도로 죽었어. 여기 못 오게 해. 조용히 하려면 못 오게 해" "여기 앉기만 해봐. 누구든 죽여버리겠다. 시끄럽게 안 하려면 박승춘이 안 와야지 왜 온다고 해"라고 항의했다. 이후 5·18 단체 대표들이 유족들을 설득해 행사 전 자기 좌석으로 돌려보냈다.

기념식이 시작되기 직전 유가족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박 처장은 하얀 소복을 입은 5.18 유가족 대표들에게 가로막혀 자리에 엉덩이 한 번 대지 못하고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유가족 대표들은 박 처장에게 "박승춘씨 여기서 나가, 박승춘 물러가라"라고 항의했고 박 처장을 보호하던 경호원들과 유가족, 취재진들이 뒤엉켜 잠시 혼란을 겪기도 했다.

행사장에서 벗어난 박 처장은 기자들과 만나 제창이 아닌 합창 결정을 한 데 대해 "국가유공자로 구성된 보훈단체들이 반대하기 때문에 제창을 허용할 수 없었다. 보훈처는 보훈단체와 관련한 기본 업무를 하는 곳이지 않느냐"고 해명했다.

이어 그는 "(제창 불허 결정은) 어느 개인이 독단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다"라며 "저를 (참석) 못하게 한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소통했냐"는 기자들의 질문엔 그저 웃으며 답변을 피했고 준비돼 있던 검정색 카니발 차량을 타고 기념식장을 벗어났다.


▶관련기사
① [카드뉴스] '임을 위한 행진곡' 막아선 박승춘의 언행? 기행!
② 보훈처 '임을 위한 행진곡' 합창이 최선의 길



박 처장이 행사장에 입장하는 것을 가로막았던 5·18 유가족 대표 김길자(76·여)씨는 행사를 마친 뒤 악수를 청해 온 국민의당 정동영(전북 전주) 의원에게 "임을 위한 행진곡 왜 제창 못 하게 하냐. 박승춘을 때려 죽여서라도 해야지"라고 말했다. 이에 정 의원은 "엄마들이 몰아내버렸네"라고 말했다.

광주 5·18 국립묘지=안효성·박가영 기자 hyoza@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