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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인쇄기에 봉인한 심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요즘을 추켜세우려다보면 옛날 것을 알로 낮추기가 쉽지만 곡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온고지신이란 말도 있듯이 옛것에 배울 점이 많다.
옛날도 역시 이런 것으로 고민했구나 하고 반갑기도 하고 기상천외한 머리에 무릎 칠일도 많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것이 비슷비슷하니 걱정거리도 비슷비슷하고 궁리들도 비슷비슷한 것이 당연한 이치겠다.
뭐 경제라 하여 별다를 게 있겠는가.
고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선 정치적 비중에 가려 경제적인 것은 다소 희미하지만 전시경제를 이끄는 고달픈 궁리와 천의무봉의 발상들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바 많다.
해방과 6·25동란을 전후해선 물가가 엄청나게 올랐다. 전쟁 인플레였다.
몇 번이나 물가를 안정시키라는 논시가 내려갔으나 효과가 없었다. 『물가가 왜 안잡히는가』 『돈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돈은 어디서 찍는가』 『조폐공사에서 찍습니다.』
아마 이런 문답이 오간 것으로 짐작된다.
54년2월11일 오전11시쯤 조폐공사 동래공장엔 느닷없이 경찰관들이 들이닥쳐 인쇄기에 봉인을 해버렸다.
대통령특명으로 돈 찍는 기계를 아예 세워버린 것이다.
53년 2월 통화개혁으로 다소 진정세를 보이던 인플레가 돈이 다시 풀리면서 재연될 기미를 보이자 사상 유례 없는 비상조처를 쓴 것이다.
조폐공사 인쇄기에 봉인을 한다해서 통화증발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라도 안 할수 없는 그 안타까운 심정과 그걸 통해 보인 단호한 인플레 척결의지는 무언가 가슴에 와 닿는 것이 있다.
조폐공사 봉인은 얼마안가 해제되었지만 그런 소동을 한번 치르고 나면 돈 쓰는데 대해선 다시 한번 생각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노대통령의 신칙이 하도 엄해 돈 찍는덴 무척 조심들을 했고 그후 인플레도 차츰 진정세를 보여 58년엔 물가가 6.5%나 내리는 기적을 낳았다.
59년에도 2.6%의 미등에 그쳤으나 그후의 정변으로 다시 인플레에 빠져든다.
이대통령의 근검절약은 천하에 명성이 드높았는데 특히 외화에 있어선 더 지독했다.
59년12월15일 은행보유불 사용은 금액의 과다를 불문하고 대통령의 재가를 받으라는 특별지시를 내렸다. 물론 달러가 금쪽 같이 귀하던 때이기도 했지만 오랜 망명생활에서 몸에 밴 근검절약 정신의 발로였다.
노대통렴이 돋보기를 쓰고 직접 챙기니 달러를 함부로 쏠 엄두나 내겠는가. 결재를 올리기 전에 심사숙고하고 어지간한 것은 포기하고 만다. 공무원 해외 출장비도 가차없이 깎아 거의 여인숙 신세를 졌다한다.
그 짠 출장비로도 어느 국무총리는 여비를 남겨 국고에 반환했다하는데 그런 분위기이니 어찌 달러를 안 아끼겠는가.
그렇게 아낀 보람이있어 전쟁이 한창이었던 52년5월31일 현재 보유외화가 미화1천8백33만4천달러, 영화7천4백파운드, 홍콩화 8백49달러라고 한은이 발표했다.
의정단상에선 외채와 국제수지를 그토록 개탄·걱정하더니 휴회되자말자 대거 외유 나가는 사람들, 조자룡 헌칼쓰듯 겁없이 인공위성 쓰는 사람들, 운동경기고 쇼프로고 모조리 생중계로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 무슨 무슨 시찰차 우르르 몰려나가는 사람들, 조찬기도횐가 뭔가 밥 한끼 먹으러 수륙만리 허겁지겁 달려가는 사람들, 해외연수 좋아하는 사람들, 국제회의 즐기는 사람들에겐 그때가 끔찍스럽게 생각될 것이다.
그때보다는 모든게 엄청나게 좋아졌지만 외화사정만은 그렇지 않다.
빚이 5백억달러에 육박하는데다 금년 경상적자가 이미 10억달러를 넘었다. 외화를 금쪽같이 아끼기를 그때만큼 해야한다. 그런데 입으론 국제수지와 외채를 개탄하면서도 스스로는 그렇게 안하는 사람들이 많다. 외채를 줄이려면 이제까지와는 확실히 다르게 살아야 한다. 먹는 것, 입는 것, 밖에 나가는 것, 잔치하는것 모든게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외화를 아끼는 기풍을 진작시키기위해 대통령 재가까지는 안가더라도 지독하게 거르는 데가 있어야 할 것이다.
높은 분이 재가한다고 해서 꼭 쓸 외화를 안쓰는 것은 아니지만 한번쯤은 심사숙고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라도 하여 떨어지는 외화가 소중할 만큼 우리의 사정이 절박하다.
이대통령의 경제협상도 엉뚱한 데가 있다.
그당시 협상이래야 주로 대미 관계였는데 전쟁이 나고 얼마안있어 대뜸 미군이 쓰는 전기료와 수도 값을 받아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쳐가며 싸우러온 사람한테 어떻게』하고 밑에서 머뭇거리자 『다 그네들 예산에 계상돼있어』하고 다그쳤다 한다. 워낙 분부가 엄해 황송한 마음으로 운을 떼 보았더니 두말 않고 주더라는 것이었다.
전쟁때 참전미군들의 전비를 한국은행에서 빌어 썼는데 그걸 갚는 환율을 놓고 대판 싸움을 벌이기도하고 빨리 갚지 않는다고 유엔군 대여금을 중단하기도 했다.
미 측에선 보복으로 기름공급을 끊어버려 월여의 한미경제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그땐 미측이 구세주 같은 때였는데 그렇다고 봐주지 않았다. 백척간두의 벼랑에서도 찾을 것은 찾고, 버틸 것은 버틴다는 계산과 배짱이었다.
오늘날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일도 많지만 그 정신만은 결코 웃을 수 없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마음을 다져먹고 근검절약하고 밖으로 손해보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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