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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흑우·흑돼지고기엔 단맛 있어”…앨런 “고추장 소스, 하와이서도 쓸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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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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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섬이다. 섬의 대척점엔 뭍이 있다. 오랫동안 뭍에서 섬으로 간다는 것은 낙천·유배·피란을 뜻했다. 이제는 여행·휴양·피안(彼岸)의 여정이다. 도시가 지겨워질 때 사람들은 섬으로 향한다. 섬은 일상의 대척점이다.

[맛있는 월요일] 제주에 푹 빠진 하와이 스타 셰프

하와이도 섬이다. 지난 9일 그곳에서 두 요리사가 제주로 날아왔다. 로이 야마구치(Roy Yamaguchi)와 앨런 웡(Alan Wong). 둘 다 하와이 음식사를 다시 쓴 인물로 일컬어지는 일본계 하와이안이다. 하와이가 휴양지로 각광받은 지는 오래됐지만 고유 음식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특히 두 사람이 주축이 된 ‘하와이 푸드&와인 페스티벌’은 매년 가을 세계 관광객들을 ‘미식 낙원’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들은 ‘하와이 푸드&와인 페스티벌’과 자매결연을 한 ‘제주 푸드&와인 페스티벌’(5월 12~14일)에 참여하기 위해 왔다. <본지 5월 13일자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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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지역 요리’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앨런 웡(왼쪽)과 로이 야마구치 셰프가 각각 제주산 참돔과 전복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들은 이 식재료를 활용한 퓨전 요리도 선보였다. [사진 오상민 기자]

한국 방문이 각각 네 번째(로이), 두 번째(앨런)라고 했다. 지난 10일 서귀포시 성산일출봉 인근 식당에서 만났을 때 큼지막한 전복을 한 바구니 안고 나타났다. 파도가 험한 궂은 날이었는데 예정대로 잠수복을 입고 해녀들과 물질 체험을 한 뒤였다. “제주의 물밑 풍경이 하와이와 달라서 새롭고 흥미로웠다”며 웃었다.


# 30년 지기 셰프들의 ‘하와이 지역 요리’ 알리기



먼저 앨런에게 물었다. “당신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요리사라는 게 사실인가?” 한국 포털에서 앨런 웡을 치면 ‘자산이 1조2000억원에 이르는 부자 셰프’라는 설명이 뜬다. 앨런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홍콩의 동명이인 IT(정보기술) 사업가와 혼동한 것”이라고 했다. 하와이 호놀룰루와 중국 상하이 등에 자신의 이름을 건 식당을 운영하고 있긴 해도 억만장자와는 거리가 멀다는 설명이다.

앨런의 또 다른 연관 키워드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다. 이 부분은 사실이다. 앨런은 “오바마가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이던 시절부터 식당에 자주 왔다”며 “2009년 백악관 입성 뒤 첫 관저 파티도 내게 맡겼다”고 밝혔다. 호놀룰루에 위치한 레스토랑 ‘앨런 웡’은 오바마가 하와이에 갈 때마다 찾는 단골집이다. 지난 연말 가족휴가 때도 이곳에서 친구들과 식사를 했다.

먼저 스타 셰프 반열에 오른 이는 로이다. 명문 요리학교 CIA를 졸업한 뒤 유수 레스토랑을 거쳤다. ‘캘리포니아-프렌치-일식’이 혼합된 스타일을 창조했다고 평가된다. “내가 물려받은 유산(heritage)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 그게 나만의 고유한 요리죠.”(로이) 1993년 하와이 최초로 제임스 비어드 ‘베스트 퍼시픽 노스웨스트 셰프’상을 수상했다. 현재 하와이·괌과 일본 등지에서 30여 개에 이르는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30년 가까운 친구 사이인 두 사람은 90년대 하와이 지역 요리(Hawaii regional cuisine) 운동의 주창자들이다. 그전까지 하와이의 고급 요리란 미 본토(특히 캘리포니아)에서 공수한 식재료에 프렌치 테크닉을 접목하는 식이었다. 로이와 앨런을 비롯한 젊은 요리사들은 ‘과거로부터의 단절’을 꿈꿨다. 이들은 일본·중국·필리핀계 이민자 후손이 다수인 하와이의 지역색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그들의 접시에 하와이의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지면서 세계 미식가의 발길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하와이 푸드&와인 페스티벌’도 비슷한 이유에서 시작됐다. “섬에서 살아가려면 공동체 의식과 지속가능성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미식 축제를 통해 하와이의 식재료를 알리고 지역 농부·어부·관광업자들이 혜택을 받길 바랐죠. 항공사·호텔·와이너리의 협찬을 끌어내고 하와이 주 정부와 긴밀한 협력을 한 덕에 6년째 순항 중입니다.”(로이)


# 제주 사람들, 그 끈질긴 생활력에 경외심



뭍사람들에게 섬은 ‘일상 탈출’이지만 섬 사람들에겐 삶의 터전이다. 로이와 앨런은 이를 잘 알고 있다. 섬의 생태를 유지하면서 더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게 만들 때 축제는 성공적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도 없는 법이다.

“우리도 첫해(2011년)엔 사흘로 시작했어요. 지난해는 보름이나 이어졌고, 저명한 셰프 100여 명과 40개 와이너리가 동참했죠. 많은 셰프들이 와서 제주의 식재료를 경험하고 돌아가 홍보대사 역할을 자처한다면 제주 행사도 계속 발전할 거라 봅니다.”

신생 페스티벌에 흔쾌히 참여하게 된 이유는 뭘까. 로이는 “제주 사람들의 억척같은 생활에 감명받았다”고 했다. 앞서 제주에 몇 번 들렀던 그는 버섯농장과 흑우·흑돼지 농가 등을 둘러보았다. “이들이 생산해내는 좋은 식재료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도록 돕고 싶다”고 했다. 앨런도 마찬가지다. “음식을 나눈다는 것은 문화를 알게 되는 것이죠. 서로 문화를 알면 싸울 일이 없어요. 음식을 통해 제가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방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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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야마구치가 제주산 흑우와 전복으로 만든 쇠고기 카르파초.

로이는 13일 제주 한라대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마스터 셰프들의 요리시연’에 제주산 식재료를 활용한 ‘쇠고기 카르파초’를 선보였다. 제주산 흑우 안심·등심·엉덩이살을 살짝 익힌 뒤 생전복을 알갱이 크기로 잘라 배합했다. 간장·참기름·다진 양파 등은 전부 국산재료를 썼다. 하와이에서 가져온 식초와 차이브(허브의 일종)를 곁들여 이국적 풍미를 더했다. 그는 제주산 흑우·흑돼지에 대해 “고기 자체에 단맛이 있다”며 “세게 양념하지 않고 제맛을 살리는 데 포인트를 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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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웡이 제주산 참돔을 하와이 전통요리 기법으로 풀어낸 포케.

앨런은 14일 해비치 호텔 디너에서 제주 참돔을 이용해 하와이 고유 음식 ‘포케(Poke)’를 만들었다. 신선한 생선살을 큐브(사각) 형태로 잘라 실파·양파·참기름·고춧가루·고추장 등에 버무렸다. 톳과 파래도 곁들였다. “하와이 어부들이 먹던 전통음식이죠. 제주에서도 이런 레시피를 활용해봄 직하고, 저 역시 이번에 알게 된 한국 소스들을 하와이에서 응용해 보려고요.”

언젠가 하와이에서 고추장 소스에 버무린 생선 포케를 만나게 된다 해도 놀라지 말자. 섬과 섬은 떨어져 있지만 서로를 잇는 사람이 있고 음식이 있다.

제주 푸드&와인 페스티벌

제주의 청정 농·수·축산물을 널리 알리고 ‘미식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 기획됐다. 첫해인 올해는 국내외 저명한 셰프 18명이 참여해 사흘간 ‘미식의 향연’을 펼쳤다. (사)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이사장 정문선)과 제주관광공사(사장 최갑열)가 공동 주관했다.

제주=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사진=오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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