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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생존율 낮은 희귀 백혈병 환자, 희망 포기하지 마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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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성 림프모구성 백혈병은 희귀 혈액암 가운데 가장 고약한 암으로 꼽힌다. 성인의 생존율은 30% 정도다. 우리나라 전체 암 생존율 69.4%와 비교하면 아주 낮은 수준이다. 질환이 매우 빠르게 진행돼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쉽다. 절반 이상은 재발한다. 재발 시 생존율은 7% 아래로 떨어진다. 생존기간은 평균 3.3개월에 불과하다. 34~39세의 젊은층에서 주로 발생해 안타까움을 더한다. 환자가 적고 생존기간도 짧아 지금껏 치료제도 없었다. 그러나 최근 새 치료제가 등장해 환자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급성 림프모구성 백혈병 치료약 개발

20대 후반 창창하던 이서형(가명)씨의 인생은 지난해 4월 완전히 바뀌었다. 첫 월급을 타고 부모님께 선물을 사드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허리가 아파 찾은 병원에서 허리 디스크 대신 백혈병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내놓았다. 정밀 진단 결과 ‘급성 림프모구성 백혈병’이란 진단을 받았다. 백혈병 중에서도 혈액·골수 속 종양 세포가 매우 빠르게 번식하는 급성 백혈병의 일종이다. 급성 백혈병에는 골수성과 림프모구성이 있는데, 이씨가 진단받은 급성 림프모구성 백혈병은 환자가 적고 예후도 나쁜 편에 속한다.

치료 받아도 절반 이상 재발

다행인 점은 완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조혈모세포를 이식하면 완치를 기대할 수 있다. 완치율(5년 생존율)은 환자가 소아냐 성인이냐에 따라 차이가 크다. 소아 환자는 완치율이 85~90%에 이르지만 성인 환자는 30% 정도에 불과하다. 성인 환자는 치료를 시도할 수 있는 것만으로 운이 좋다고 볼 수 있다. 모든 환자가 조혈모세포를 이식받을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종양세포가 일시적으로 완전히 사라진 상태(완전 관해)에서만 이식을 시도한다. 이 상태를 만들기 위해선 매우 독한 항암제를 반복적으로 투여해야 한다. 한 번에 2~4가지 항암제를 쓰기에 환자가 받는 고통은 더욱 크다.

이씨 역시 6개월간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겨우 견딘 끝에 조혈모세포를 이식받았다. 이식 후에도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조혈모세포 이식에도 절반 정도는 재발하는데, 이때는 예후가 매우 나쁘기 때문이다. 사망률이 94%에 이른다. 한 해에 급성 림프모구성 백혈병을 진단받는 성인은 200여 명. 절반인 100여 명이 재발하거나 기존 치료제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다. 이 가운데 겨우 6~7명만 살아남는다는 의미다. 안타깝게도 이씨의 경우 병마가 쉽게 물러가지 않았다. 이식 6개월 만에 재발이 확인됐다. 현재 이씨는 조혈모세포 이식을 한 번 더 시도하기 위해 1차 치료 때보다 더 독한 항암제를 맞고 있다. 통계적으로 이씨가 조혈모세포 이식을 시도할 수 있는 확률은 높아야 20% 내외다. 한마디로 기적을 바라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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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처 ‘블리나투모맙’ 허가

이런 가운데 최근 한 줄기 희망이 나타났다. 지난해 말 새 치료제인 ‘블리나투모맙’이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은 것이다. 이씨처럼 재발하거나 기존 항암제에 반응하지 않는 급성 림프모구성 백혈병에 효과가 있는 유일한 치료제다. 정확히는 조혈모세포를 이식받을 수 있는 확률을 높여준다. 기존 20% 내외였던 확률은 43%까지 늘었다. 다른 항암제와 같이 사용하면 이 확률은 더욱 올라갈 것으로 의학계에선 기대한다.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박실비아 교수는 “고위험군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단일 약물로 조혈모세포 이식 확률을 43%까지 끌어올렸다는 건 놀라운 성과”라고 말했다.

기존 항암제보다 독성이 훨씬 적다는 점도 기대감을 높이는 이유다. 종전 항암제는 종양 세포를 파괴할 때 정상 세포까지 죽여 상당한 부작용을 동반했다. 전체 환자의 10~15%는 백혈병이 아닌 항암제 부작용으로 사망한다. 반면에 블리나투모맙은 종양 세포를 직접 파괴하지 않는다. 대신 몸속 면역세포가 종양 세포를 공격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놔준다. 당연히 독성이 훨씬 적다. 최근 3세대 항암제로 주목받는 ‘면역항암제’의 일종이다. 박 교수는 “기존 항암치료로는 치료 도중 골수 기능 저하로 인해 감염증이 나타나기 쉽고 심하면 사망에 이른다. 하지만 블리나투모맙은 종양 세포에만 반응해 무차별적으로 세포를 공격하던 종전 항암치료의 부작용을 줄이는 데 유리하다”고 말했다.

이씨를 포함해 이 치료제가 등장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려 온 환자는 우리나라에 200명 정도. 하지만 모든 환자가 이 약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아직 건강보험 급여 혜택을 받지 못해 가격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이 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와 가족 가운데 경제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있는 점을 고려해 합리적인 가격으로 약물이 공급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진구 기자 kim.jin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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