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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금배지의 나라…의원전용 출입문부터 바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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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엊그제 열린 ‘20대 국회 초선의원 의정 연찬회’가 특권 체험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의전과 형식이 시종 당선자들에게 특권의식을 조장했다는 것이다. 국회 사무처가 주관한 이 행사에서 100여 명의 초선 당선자들은 의원회관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데 미리 여직원들이 잡아놓은 석 대의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다니 꼴불견이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의원회관을 찾은 일반 민원인들은 그 시간에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못했다. 당선자들이 국회 경내의 다른 건물인 헌정기념관에서 의원회관으로 이동하는 거리는 약 300m다. 이 거리를 이들은 대형 우등버스 6대에 나눠 타고 움직였다.

국회의원들과 그 보좌진이 쓰는 지금의 의원회관은 4년 전 2200억원을 들인 신축 및 리모델링 공사로 멋진 현대식 건물로 재탄생됐다. 현대식이라곤 하지만 공간적 배치는 후진적이기 이를 데 없다. 유리로 된 대형 정문의 3분의 2는 국회의원 300명만 사용할 수 있는 의원전용 출입문이고 옆의 작은 회전문을 통해 2000여 명에 이르는 보좌진과 더 많은 민원인들이 드나들게 돼 있다. 연찬회 날도 초선 의원과 참모·취재진이 함께 이동하다 정문 앞에서 의원들은 의원전용 문으로 나머지는 회전문으로 갈라져야 했다. 이러니 초선의원들이 특권부터 배운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국회 사무처는 4년마다 있는 초선의원 연찬회의 매뉴얼을 따랐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시대가 바뀌면 의전도 형식도 바꿔야 한다. 자신들이 무슨 초법적 존재라도 되는 것처럼 막말, 갑질, 호통, 위법을 밥 먹듯 저질렀던 19대 의원들의 세상을 끝내야 한다. 20대 총선은 그 어느 때보다 현역 의원의 특권·기득권이 문제가 됐던 만큼 이제 일상의 국회생활에서 조용하지만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에게 부여된 특권은 200가지쯤 된다. 그동안 여야 정치권은 ‘세비를 30% 삭감한다’ ‘무노동 무임금제를 도입하겠다’에 심지어 ‘헌법상 보장된 불체포특권까지 포기하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실천된 게 없다. 선거를 앞두고 표가 필요할 때만 “국민을 하늘처럼 모시겠다”고 떠들다가 일상으로 돌아오면 바쁜 일 하는 척, 더 중요한 투쟁하는 척하면서 방치하기 일쑤였다. 이제는 크고 장한 특권 내려놓겠다는 약속은 그만하고 신분사회의 흔적이자 금배지 특권의 상징인 의원전용 출입문만이라도 바꿀 것을 촉구한다. 빈 수레가 요란하고 실력 없는 사람이 겉만 치장하는 법이다. 말로만 말고 행동으로 국민과 함께 드나드는 출입문을 만들어 보라. 그렇게 한다고 헌법기관으로서 국회의원의 권위가 깎이거나 정책·법안 생산능력이 훼손되지는 않을 것이다. 일반 시민들은 웅대한 국회본관·의원회관 앞에서 한 번 움찔하고 의원전용 출입문을 보면서 한 번 더 기가 죽는다. 작고 실질적인 변화가 국민을 감동시킬 것이다. 19대 국회의장단의 마지막 대국민서비스이거나 20대 국회 3당 원내대표단의 첫 번째 합의로 의원전용 출입문을 일반에게 개방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