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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가 말하는 나의 인생 나의 건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아흔다된 늙은 할미가 뭐 건강하겠우. 요즈음엔 건망증도 심한데….』
처음에 이처럼 인터뷰를 사양하던 생존하는 최고령 간호원인 최신은여사 (87·전전주화호중앙병원 간호원장) 는 막상 찾아가자 정능계곡입구까지 마중을 나왔다.
『건강해야겠다고 특별히 신경을 쓰고 살아오진 않았어요. 교인이 아닌 분에겐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내경우는 아마 주님께서 일많이 하라고 건강을 내려주신것 같아요.』
일점혈육도 없이 50여년간을 간호현장과 농촌· 교회에서 오직 봉사만으로 일관한후 이제정능기슭에 있는 대한감리교 여전도회안식관에서 노후를 보내고 있는 최여사는 이렇게 말하고 조용히 웃었다.
『간호업무나 농촌계몽, 전도사업등이 결코 쉽지는 않아요. 오히려 꽤나 고되지요. 하지만 끊임없이 일거리를 찾고, 그 좋은 일을 행하면 마음에서부터 건강이 저절로 우러나옵니다.』
최여사는 모친과, 독립운동하던 부친마저 13세때 여의고 4남매가 뿔뿔이 흩어져 고아가됐다.
그는 1926년 세브란스의전부속간호원양성소 (현연대간호대)를 나온후 31년 협성신학교를 졸업, 간호원과 전도사의 일을 경하면서 문맹퇴치등 농촌계몽활동까지 벌여 1인3역을 쉼없이 해왔다.
6·25동란때는 「생명에는 차이가 없다」는 신념하에 북괴군부상병에 대한 치료도 따뜻이 해주어 그들마저 이 백의의 천사 (최여사는 61년 세계적십자사 제정 나이팅게일 기장을, 68년 용신봉사상을 받았다)를 존경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주어진 건강이라도 관리가 소흘하면 계속 유지될리는 만무하다.
『비교적 건강했던 다른 이유를 굳이 든다면 역시 규칙적인 생활이 아닐까요』
화호중앙병원에서 30여년간 간호원 생활을하다 지난73년 은퇴한후 요즘도 거르지 않는것은 새벽기도와 산책.
새벽4시부터 2시간동안 이웃 정능감리교회에 나가 나라의 평안과 마음의 수양을 위해 기도한다.
상오중에는 한자공부겸해서『명심보감』을 통독하고 하오에는 안식관안의 채마밭 가꾸기나 산책 또는 노인대학에 나가 강의를 듣는등 평생공부를 계속한다.『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는 마태복음 구절을 가장 깊이 새기고있다.
(글 윤재석기자 사진 채흥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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