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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인사이드] 혼인 파탄에 이른 부부, 재산분할은 어떻게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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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충청남도 아산시. 아내 A(현재 75)씨는 남편 B(현재 77)씨와 결혼을 하고 혼인신고를 마쳤습니다. 두 사람에게는 두 명의 아들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행복할 것만 같았던 결혼생활은 한 순간에 날아가 버렸습니다. 결혼 직후 군에 입대한 남편이 제대하자마자 서울로 올라가 부인과 별거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남편이 서울에 마련해 준 장소에서 잠시 생활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시댁에서 자식을 키우며 지냈습니다.

그렇게 7년의 시간이 흐른 1969년, 남편은 다른 여성을 만나 자녀 두 명을 낳았습니다. 두 집 살림이 시작됐습니다. 아내 A씨와는 50년이 넘도록 가족이라는 ‘형태’만 유지한 채 각자의 삶을 살게 된 겁니다.

1985년에는 B씨 아버지 명의로 돼있던 토지의 소유권을 옮기는 과정에서 한차례 반반씩 재산을 나눠 가지기도 했습니다. 이후 아내 A씨는 자신 몫으로 온 땅을 팔아 생활비에 썼고 남편 명의로 받은 땅에서는 농사를 지으며 두 자녀를 길렀습니다.

A씨는 또 10남매 중 장남인 남편을 대신해 아들과 나이 차이가 크지 않은 남편 동생들도 상당기간 돌봤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남편 없이 힘들게 살아왔던 아내는 결국 2014년 법원에 이혼 소송을 제기하며 위자료와 재산분할 청구 등을 요구했습니다.

법원은 남편에게 파탄에 이른 책임을 물었습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5부(부장 송인우)는 남편의 외도로 50여년 세월을 별거 상태로 산 아내 A씨가 남편 B씨를 상대로 낸 위자료 및 재산분할 소송에서 “두 사람은 이혼하고 남편은 아내에게 위자료 5000만원ㆍ자녀 양육비 8000만원ㆍ재산분할 2억원을 각 지급하라”고 9일 판결했습니다.

“남편이 다른 여성과 가정을 꾸리고 부인을 내버린 잘못으로 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르렀다. 그 주된 책임은 남편에게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재판부는 부부의 이혼을 허가하면서 일방적으로 버림받은 아내가 받은 정신적 피해와 아들이 성년이 될 때까지 전적으로 홀로 부양한 것에 따른 위자료와 자녀 양육비 지급을 명령했습니다.

특히 재판부는 아내가 재산 형성에 기여한 점을 인정해 부부의 총 재산을 나눠가지라고 판시했습니다. 다만 남편이 앞서 한 차례 재산을 아내와 반씩 나눴고 남편이 소유한 토지도 혼인 전 취득한 재산이기 때문에 아내의 몫은 20% 라고 판단했습니다.

아내 A씨가 재산 형성에 실제 기여한 점은 크지 않으나 토지를 경작하며 세금을 납부하는 등 관리를 해왔고, 두 자녀를 홀로 양육하며 시댁 식구들까지 돌본 점 등을 참작한 것입니다.

이에 따라 아내 A씨는 부부의 총 재산 12억여원 중 20%에 해당하는 금액에서 자신 명의의 재산(5600만원)을 제외한 2억원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혼인 파탄에 이르게 된 부부들의 위자료 소송에서 재판부가 모든 당사자에게 재산분할을 명령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1월 서울가정법원은 아내를 상대로 이혼과 위자료 청구 소송을 낸 남편 C(68)씨에게 "아내 명의의 재산에 남편이 기여한 점이 없다"며 재산분할을 허가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30년 넘게 연락을 끊고 지내면서 아내와 자녀들에게 경제적으로 보탬을 주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한 것입니다.

정혁준 기자 jeong.hyuk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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