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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이 내 맘 같지 않더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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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8호 32면

저자: 김중혁 출판사 : 문학동네 가격: 1만4000원

“마음은 20대, 몸은 30대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생물학적 나이로는 내일모레가 50이야. 사는 게 왜 이렇게 허무하냐.”


중년의 대화에서 ‘내 맘 같지 않은 몸’은 빠지지 않는 주제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몸은 화젯거리다. ‘초콜릿 복근’과 ‘S라인 다이어트’는 기본. 과도한 스트레스로 급격히 능력이 쇠퇴한 몸은 ‘실제 나이는 20대인데 신체 나이는 60대 노인’이라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게다가 걸핏하면 제멋대로 아프다. “그만 먹자”고 머릿속으로는 수없이 다짐하면서도 입이 원하는 탐욕에 매번 지고 만다. 정말이지 내 몸이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더란 말이다.


특정 주제와 소재를 집중적으로 파고들길 좋아하는 소설가 김중혁의 다섯 번째 에세이집은 바로 이 몸에 관한 고찰이다. “개개인의 가장 가까운 세계인 동시에 광활한 외부세계를 받아들이는 첫 관문”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켜켜이 쌓인 가장 비밀스럽고도 흥미로운 장소”라는 게 김 작가의 몸에 관한 정의다.


‘우뇌와 좌뇌’의 본능적이지만 논리적인 싸움부터 손보다 더 섬세한 ‘발’까지, 총 32개의 글을 통해 신체를 탐험하며 던지는 화두는 “삶은 어떤 식으로든 몸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작가는 말한다. “길 가다 가끔 사람들의 몸을 몰래 볼 때가 있다. 한 사람의 몸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고, 나는 몸을 보면서 그 사람의 삶을 상상해보곤 한다.”


예를 들어 영화 ‘그래비티’에서 라이온 스톤(산드라 블록) 박사의 종아리와 허벅지는 사고로 딸을 잃고 무미건조한 일상을 보낸 엄마의 것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탄탄했다. 그래서 작가는 ‘미스캐스트 종아리’라고 넘어가려다 그 종아리와 허벅지가 ‘슬퍼졌다’고 썼다. 딸을 잃고 무너지는 마음을 어떻게든 버텨내는 종아리를 응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몸의 단서를 쫓는 책 『FBI 행동의 심리학』을 통해서는 팔짱을 끼는 데는 두 가지 자세가 있고 이는 두 개의 심리를 반영하고 있음을 얘기한다. 이 자세의 비밀은 팔이 아니라 손가락에 있다. 팔짱을 끼고 자연스럽게 구부린 손가락은 편안함을, 힘이 꽉 들어간 손가락은 불편함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오장육부를 제외하고 겉으로 드러난 우리 몸의 일부를 세세히 훑어나가는 작가의 글은 읽기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또 어렵다. 당연히 나올 법한 의학·과학 이론은 오히려 이해하기 쉽다. 정작 작가의 생각을 따라가기 어려운 건 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영화·문학 속에 등장하는 몸이다. 장르 불문하고 종횡무진하며 신체의 일부를 클로즈업해서 이야기와 몸의 상징성을 버무리는데, 그 맛이 신기하고 재밌다가도 보지 않은 것들이 등장하면 기실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채기 어렵다. 어떤 글은 몸을 구실삼아 쓴 영화 에세이처럼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책 읽기를 멈추진 못 한다. 신체 부위 10군데에 대한 김중혁식 설명서 ‘믿거나 말거나 인체사전’, 일러스트 ‘몸의 일기’ 같은 위트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귀는 신체 부위 중 퇴화가 가장 빨리 진행되는 곳으로 나이가 많을수록 남의 말을 잘 듣지 못하는 ‘꼰대형 청력상실증 환자’들을 쉽게 볼 수 있고 이들의 특징 중 하나는 청력이 약해지면서 말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이다”라는 대목에선 국회와 청와대를 차지하고 있는 나이 많은 분들이 떠올라 쿡쿡 올라오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다.


갓 태어난 아기의 몸을 만져보면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말랑말랑하다.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작은 뒤척임 하나만으로도 사랑스러움이 충분히 느껴진다. 어른이 될수록 우리 몸은 딱딱해지고 하는 말은 많아졌지만 소통의 유연성은 점차 줄어든다. 어쩌면 이는 반복적이고 지루한 일상을 받쳐주는 가장 소외되고 불쌍한 몸의 마지막 경고가 아닐까. 제발 귀 기울이라는. 내 몸의 언어든, 타인의 말이든.


작가는 “죽을 때까지 팔다리를 흔들어야 하는 운명이라면 버둥거리기보다 춤을 추며 살고 싶다. 춤을 추며 죽고 싶다”고 했다.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말이다. 나는, 내 몸과 함께 어떡하면 잘 늙을 수 있을까.


글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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