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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악당보다 더 지독한, 사이코 홍길동이 온다 ‘탐정 홍길동:사라진 마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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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2주차 400만 관객을 모은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 이 아메리카 히어로의 아성을 위협할 한국 토종 영웅이 등장했다. 1980년대 불법 흥신소 ‘활빈당’을 이끄는 탐정 홍길동이다.

‘탐정 홍길동…’ 오늘 개봉

4일 개봉하는 조성희 감독의 ‘탐정 홍길동:사라진 마을’(이하 ‘탐정 홍길동’)은 어머니를 죽인 원수를 찾아 헤매던 홍길동이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면서 거대한 악의 조직 실체를 파고드는 액션 활극이다. “자기만의 룰로 불의에 맞서고, 아버지 세대와 갈등하는 점”(조성희 감독)은 원래 고전소설 홍길동과 같지만, 악을 소탕하는 정의의 화신일 거란 예상을 뒤집는다. 한마디로 악당보다 더 지독한, 악당못잖은 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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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홍길동’에서 이제훈은 김성균이 이끄는 악의 조직과 한판 대결을 벌인다. 그는 “2010년 조성희 감독의 장편 데뷔작 ‘짐승의 끝’을 보고 함께 작업하고 싶었다”며 “출연제의를 받고 내심 반가웠다”고 말했다. [사진 전소윤(STUDIO 706)]

700만 관객을 동원한 전작 ‘늑대소년’으로 송중기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조감독은 이 새로운 홍길동으로 이제훈(32)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 “내가 상상한 홍길동의 예민한 말투, 외모가 딱 이제훈이었다. 무엇보다 그의 본능적인 연기를 믿었다”는 게 조감독의 말이다.

‘탐정 홍길동’은 이제훈의 제대 후 첫 영화다. TV드라마로는 ‘시그널’ 등 신고식을 치렀지만, 영화로는 컴백작인 셈이다. 첫 원 톱 주연작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데뷔작 ‘파수꾼’, 출세작 ‘건축학개론’ 등에서 특유의 예민하고 현실감 넘치는 캐릭터를 연기해온 그가 처음 만화적 캐릭터에 도전했다. “홍길동이 소시오패스 같은 캐릭터라 자칫 비호감으로 비칠지 모른다는 걱정은 있었죠. 하지만 기왕 하는 것 멋있기보단 진짜 사이코처럼 보이길 바랐어요. 그림으로 치면 프란시스 베이컨 풍의 사악하고 음습한 인물 있잖아요. 질 나쁜 범죄자만 골라 죽이는 연쇄 살인마 수사관을 그린 미드 ‘덱스터’도 참고했습니다.”

영상은 한국판 ‘씬 시티’라 할 만큼 감각적이다. 강원도 산골 마을이 주 무대지만, 과감한 CG(컴퓨터그래픽)와 미술·세트로 1950~60년대 미국 필름 느와르의 음습한 분위기를 한껏 살렸다. 변화무쌍한 전개에 위트있게 호흡하는 이제훈의 연기도 호평을 받았다. “전형적인 연기를 피하려고 애쓰는 편인데, 홍길동은 모두가 아는 특유의 이미지가 있잖아요. 거기에 감독의 상상을 내 나름대로 표현하면 어떻게 빚어져 나올까, 누구보다 제가 궁금했어요.”

영화에서 홍길동을 변화시키는 건 그가 20년간 쫓던 원수의 손녀인 어린 자매 다. 그중 아역배우 김하나는 놀라울 정도의 연기를 선보인다. “아역 배우와 연기한 게 처음인데 새로운 경험을 했어요. 김하나는 연기가 처음인데,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은 연기가 허를 찌르더라구요. 길동이 아이들한테 못되게 굴 땐 죄 짓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데뷔작 ‘파수꾼’의 이미지가 워낙 강렬해설까. 30대이지만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듯한 이미지가 있다고 했더니 “군대를 다녀와서도 아저씨가 안 된 것 같다는 건 다행”이라고 답했다. “사회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친구들은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있잖아요. 제가 여전히 꿈을 꿀 수 있는 건 배우라는 직업 덕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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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영화 ‘건축학개론’. [사진 전소윤(STUDIO 706)]

이제훈은 고려대 공대 재학중 영화가 좋아 중퇴하고 한예종 연극원에 진학했다. 스스로 “허우샤오시엔을 좋아하고 홍상수 유머에 배꼽 잡는 스타일. 자꾸 심각한 얘기로 빠져서 별명이 애늙은이. 영화말고는 취미도 없는 심심한 사람”이라고 했다. “예전엔 나란 사람을 증명해야 한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작품 속 이미지로만 승부하면서 어찌보면 폐쇄적으로 10년을 끌고 왔죠. 일상의 이제훈이 대중에 노출되면 작품에 방해가 될 것 같았거든요. 지금은 다릅니다. 자연인으로서의 모습도 편안하게 받아들여질 거란 믿음이 생겼어요. JTBC ‘냉장고를 부탁해’ 같은 예능에도 출연하고요(웃음).”

“작품을 고를 때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도 생각한다. 시간을 내서 봐주는 사람한테, 적어도 값지고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그는 “언젠가 저만의 제작사를 꾸려 값진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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