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국회의장실 한때 봉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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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이 얼어붙고 있다.

11일 국회에선 실력 저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해 8월 민주당 의원들이 법무장관 해임건의안 처리를 막기 위해 한남동 의장공관에 몰려가 박관용(朴寬用)국회의장의 등원을 저지한 지 10개월여 만이다. 한나라당이 수사대상을 핵 개발 비용과 대북송금의 연관성 등으로 넓힌 새 특검법안을 처리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정쟁의 볼모 된 국회의장=오후 6시20분. 국회의장실 앞에 민주당 의원 30여명이 몰려 들었다. 한나라당이 새 특검법안의 처리를 결의한 데 대한 대응이었다. 의장실 문을 나서려던 朴의장은 "이게 무슨 짓이냐"며 표정을 일그러뜨린 뒤 도로 의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곤 양당 총무를 불렀다.

의장실 밖에선 민주당 의원들이 "숫자가 있다고 아무거나 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건 횡포"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송영길(宋永吉)의원은 "한나라당이 낸 특검법안은 국회법 위반"이라며 "'1백50억원+α'에 전혀 새로운 핵 개발 의혹 등을 포함시킨 안이 어떻게 수정안이 될 수 있느냐"고 항변했다.

朴의장은 "직권상정을 안할 테니 돌아가라"고 일단 민주당 의원들을 물리쳤다. 한나라당 홍사덕(洪思德)총무와 민주당 鄭총무가 절충을 시도했다.

鄭총무는 "추경안이 통과된다면 특검법은 어떻게 처리하든 상관없다"고 했고, 한나라당 洪총무는 "그 약속을 속기록에 남기면 오늘 처리는 않겠다"고 했다. 추경안은 14일께 열릴 본회의에서 처리키로 했다.

이렇게 해서 朴의장은 오후 8시 본회의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민주당 의원들의 불참 속에 열린 본회의에서 朴의장은 양당 총무의 협상 결과를 설명한 뒤 산회를 선포했다.

그러나 미봉상태의 특검법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의 기 싸움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본회의 산회 후 민주당 구주류인 한화갑(韓和甲) 전 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앞으로 한나라당이 강행 처리를 시도하면 의원직을 총사퇴하자"고 했다.

◆한나라당의 당론 번복=특검법 처리와 관련해 당론 변경을 주도한 것은 한나라당 최병렬(崔秉烈)대표였다.

오전 의원총회에서 안상수(安商守)의원 등은 "대한민국 세금이 북한의 핵무기 제조에 쓰였다는 건 국민에 대한 반역행위"라며 "이에 대한 특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9일 국회 정보위에서 공개된 북한의 고폭실험 사실을 거론한 것이다.

그러자 崔대표가 나섰다. 崔대표는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 초에 정부가 북한의 고폭실험 사실을 알고도 현금 지원 등을 한 것은 핵을 개발하라고 돈을 대줬다고밖에 볼 수 없다"며 "특검은 이것까지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검안을 다시 뒤집으면 한나라당이 갈팡질팡하는 당으로 보일 수 있으나 그렇다고 새 사실을 알고도 묵과할 순 없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당론은 이렇게 해서 하루 만에 뒤집혔다.

崔대표의 입장 선회를 놓고 당내에선 정국돌파용이란 분석이 나왔다. 민주당 정대철 대표의 굿모닝시티 자금수수 사건이 불거지면서 정치권에선 총선을 앞둔 정치인 사정설이 유포되고 있다. 때문에 맞불 차원에서 초강경 특검 카드를 들고 나왔다는 것이다.

崔대표의 대여 강공이 당내용이란 분석도 있다. 당내에선 崔대표.洪총무 체제에 대한 불만이 표출되고 있다. 때문에 이를 잠재우기 위해 대여 관계에서 선명성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담도 적지 않다. 洪총무의 입지 위축, 그리고 상대적으로 확산되는 제왕적 대표론이 그 것이다. 당론 번복에 따른 정국 경색도 崔대표가 풀어야 할 숙제다.

박승희.강갑생 기자

<사진 설명 전문>
정균환 총무 등 민주당 의원들이 11일 오후 한나라당이 제출한 대북송금 새 특검법 재수정안의 본회의 통과를 막기 위해 국회의장실 앞에서 박관용 의장의 출입을 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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