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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으로] 어떤 옷 입고 무슨 화장품 쓰지? 걱정 마! 취향에 맞게 골라줄게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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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 장애’ 겪는 사람 위한 ‘큐레이션 커머스’


어떤 옷을 입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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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션 커머스’의 종류는 다양하다. 전문가가 직접 고른 바나나·파인애플·자몽 등을 보내 주고 영·유아의 성장 단계에 맞춰 동화책도 골라 준다. [사진 각 업체]

회사원 김보원(32)씨는 초등학교 동창의 결혼식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온라인쇼핑몰에 접속해 옷 수십 벌을 살펴본 뒤 몇 벌을 ‘장바구니’에 담았지만 확신이 서지 않았다. 바쁜 업무 탓에 의류매장을 돌아다닐 짬도 나지 않았다. 결국 스타일리스트가 옷을 골라 보내주는 온라인 스타일링 서비스 ‘유어스타일리스트’의 문을 두드렸다. 스타일리스트는 김씨와 일대일로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취향, 스타일링 목적 등을 파악했다. 3일 뒤 재킷·셔츠·바지·넥타이·신발 등 다섯 가지 패션 아이템이 배달됐다. 김씨는 이 가운데 셔츠·바지·넥타이를 선택해 결제하고 나머지는 반송했다. 김씨는 “맘에 드는 아이템 3개를 골라 27만원을 지불했다”며 “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링을 받으니 사 놓고 안 입는 옷이 없어져 만족도가 상당히 높다”고 말했다. 최근에도 그는 ‘봄철 데이트룩’을 스타일링 받고는 여자친구로부터 “패션 센스가 있다”는 칭찬까지 들었다.

워킹맘 김연희(30)씨는 마트에 가면 과일 코너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인터넷에서 ‘맛있는 과일 고르는 법’을 찾아본 뒤 과일 상태를 꼼꼼히 살펴보고 사지만 실패를 맛보기 일쑤였다. 누군가 매주 맛있는 과일을 골라 가져다 줬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올 2월 과일 배송 서비스 ‘돌리버리’를 만나면서 걱정이 사라졌다.

매주 수요일이면 그의 집에는 7가지 종류로 구성된 과일 박스가 배달된다. 김씨는 “더 이상 과일을 고르는 데 시간을 허비하거나 무겁게 들고 오지 않아도 돼 너무 좋다”고 말했다.

정보와 제품이 넘쳐나는 시대, 선택에 어려움을 느끼는 이른바 ‘결정(선택) 장애’를 호소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셰익스피어 희곡 속 ‘햄릿’의 우유부단한 내적 갈등에 빗대 ‘햄릿 증후군(Hamlet Syndrome)’이라고도 부른다. 이런 사람들을 위한 ‘큐레이션 커머스(Curation Commerce)’가 주목받고 있다.

미술관의 큐레이터가 예술작품을 골라 대중에게 선보이듯 분야별 전문가가 제품을 선별해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형식의 전자상거래다. 정기 배송될 경우 ‘서브스크립션(subscription·구독) 서비스’로도 부른다. 이준영 상명대 소비자주거학과 교수는 “빅데이터 분석 기법 등의 발달로 큐레이션 서비스의 범위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며 “고객 자신도 스스로 무엇에 ‘만족’하는지 모르는 정보 과잉 시대에 전문가가 골라주는 ‘최적’이 중요해졌다”고 설명했다.

큐레이션 대상 품목도 반찬·채소·과일·빵·커피 등 식품류에서 옷·화장품·꽃·책, 임신·육아용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세트로 꾸려지는 상품이 대부분이라 가격도 정가보다 10~50%가량 저렴하다. 1인 가구나 맞벌이 부부가 주로 이용하는 식료품 큐레이션 서비스는 이미 대중화 단계에 들어섰다.

매월 뷰티 에디터 같은 전문가가 고른 5~6개의 화장품을 받아 보는 서비스는 20~30대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뷰티 큐레이션 서비스 ‘글로시박스’의 최홍준 대표는 “이용자 대부분이 수십 가지 브랜드와 방대한 뷰티 정보 속에서 결정에 어려움을 느껴 전문가의 선택에 의지하는 것”이라며 “올 4월 이용자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두 배가량 증가했다”고 말했다. 동화책 큐레이션 서비스 ‘베베티움’은 출판인·교사 등이 매월 아이의 성장단계에 맞춰 동화책을 골라준다. 임신부에게 10개월 동안 필요한 물품을 선별해 보내주는 ‘텐박스’는 처음 출산을 경험하는 여성들이 즐겨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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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큐레이션 커머스’ 종류는 2014년 말 기준으로 56개다. ▶식품·간식 12개 ▶종합쇼핑몰 9개 ▶패션·리빙 7개 ▶임신·출산·육아·웨딩 6개 ▶꽃 5개 ▶뷰티(화장품) 3개 등이다. 어떤 큐레이션 서비스는 자신이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 되기도 한다. 회사원 유일현(30)씨는 2년째 2주에 한 번씩 ‘꾸까’의 플로리스트들이 고른 꽃을 집으로 배달받는다. 그는 “꽃이 오는 날이면 이번엔 어떤 꽃이 올까 하는 기대 속에 퇴근시간이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복잡해진 현대사회에서 ‘결정 장애’는 제품 선택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집안일이나 회사 업무는 물론 연애, 결혼, 자녀 교육, 취업 등 인생의 주요 순간마다 ‘컨설팅’에 의존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자연스레 컨설팅 전문 기업도 증가 추세다. 가구 배치, 깔끔한 수납 등 집안 정리를 돕는 ‘정리 컨설팅’은 66?(약 20평) 기준으로 하루 종일 받으면 100만원가량 들지만 맞벌이 부부에게 인기가 높다. ‘프레젠테이션 컨설팅’은 발표 목적에 맞게 발표 자료를 기획·제작하고 발표 기술도 가르쳐 준다. ‘더 프레젠테이션 컨설팅’의 이법주 팀장은 “기업 단위로 의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발표 경쟁력을 중요시하는 개인 의뢰자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과거에 주로 경영·경제 영역에서 활동했던 ‘컨설턴트’가 생활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다. 정리·프레젠테이션·이미지·재취업 컨설턴트 등 종류도 다양해졌다. 최영순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사회가 복잡해진 만큼 많은 정보를 명확하게 정리해 줄 전문가의 손길을 원하는 수요가 계속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5명 중 1명꼴 “불만·피해 경험”… 품질 불량, 배송 지연 등 문제

‘큐레이션 커머스’는 이용자가 상품을 직접 보고 고르지 않는 특성상 불만이 생기기 쉽다. 한국소비자원이 큐레이션 커머스 이용자 7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 5명 중 한 명꼴로 “불만·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구성품의 기본 정보 부족’(65명), ‘품질 불만’(46명), ‘배송 지연과 분실’(43명) 등이 문제로 꼽혔다.

광고와 실제 배송 상품이 확연히 차이 나거나 포장이 불량해 제품이 손상된 사례도 있다. 송선덕 한국소비자원 홍보법무팀 부장은 “광고와 실제 상품 구성이 다른 경우 상품을 촬영해 놓고 광고 자료도 확보하는 등 증거를 수집하는 게 필요하다”며 “업체에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해 수용되지 않을 경우 한국소비자원에 구제 신청을 하면 도움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큐레이션 업체를 고를 땐 제품을 골라주는 전문가의 이력을 꼼꼼히 따져보고 상품평을 참고하면 실패를 줄일 수 있다. 컨설팅 이용도 마찬가지다. 컨설턴트가 그동안 어떤 일을 해 왔는지, 조언받은 사람들의 평가는 어떠한지를 세심하게 검토해 봐야 한다. 이준영 상명대 교수는 “큐레이션 시장이 더 성장하려면 서비스 제공자들이 더욱 전문화된 지식을 갖고 고객의 취향을 세세히 파악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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