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탐험(14)] ‘핵·미사일 모라토리움’ 선언은 가능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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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SLBM 발사 시험을 참관하고 있다. [사진 노동신문]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 25일 북한 인민군 창건일에 맞춰 제5차 핵실험을 강행할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국방부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예의주시했지만 북한은 예상과 달리 살짝 비켜갔다. 하지만 노동당 제7차 대회가 5월 7일로 예정돼 있어 핵실험을 강행할 시간은 아직 남아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지 않은 것을 놓고 중국의 고위 인사가 당대회에 참석할 수 있는 명분을 주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북한이 자칫 ‘집안 잔치’로 끝날 수 있는 당대회에 최소한 중국 대표단은 참석해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체면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에서 손님이 올 것 같지는 않다.

알듯말듯한 북·중 관계를 전망하기란 어렵다. 온갖 추측이 사실보다 더 사실 같아서 섣불리 단정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의 제5차 핵실험은 더 지켜볼 대목이다. 하지만 북한의 최근 행보를 보면 조건에 따라 핵 실험을 잠정 중단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 국방위원회는 지난 3일 대변인 담화를 통해 “일방적 제재보다 안정 유지가 급선무이고, 군사적 압박보다 협상 마련이 근본 해결책”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이수용 외무상이 지난 23일 미국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지하면 핵실험을 중단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김정은이 노동당 제7차 대회 이후에 어떻게 나올지가 주목된다. 지금 추세를 보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의 실험은 계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미합동군사훈련을 멈출 생각이 없다”고 언급해 미국이 대화 제스처를 보이기 전까지 핵·미사일의 고도화을 중단하지 않을 조짐이다.

과거 북한의 형태를 보더라도 여기서 멈출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자존심이 강한 북한이 특별한 명분도 없이 쉽게 방향을 선회하지 않을 것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지금의 강경노선으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려고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언제까지인가다.

김정은이 ‘핵·미사일 모라토리움’을 선언할 가능성은 없을까? 이는 김정은이 지금 조성된 위기의 탈출구로 생각할 만한 카드다. 북한은 2001년 5월 요란 페르손 유럽연합(EU) 의장이 방북했을 때 미사일 발사를 2003년까지 유예한 적이 있었다. 선례가 있기 때문에 김정은이 국면 전환용으로 김정일처럼 모라토리움 선언을 할 가능성도 배제핼 수 없다. 문제는 명분이다.

이 부분이 김정은이 고민하는 부분이다. 안타깝게도 외부에서 명분을 받기는 어렵다. 김정은의 딜레마는 북한이 먼저 가시적인 조치를 내놓지 않으면 국제사회가 ‘당근’을 먼저 던질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북한이 언제까지 ‘몽니’를 부릴지 모르지만 시간은 북한 편이 아니다. 유엔 안보리의 제재가 단기적으로 효과가 적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북한에 불리하다.

이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북한이 자력갱생에 익숙해 이번 제재에 대한 효과가 생각보다 미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매에는 장사가 없다. 그동안 비축한 자원들이 서서히 고갈되면 ‘돈맛’을 들인 북한이 버티는데 한계에 도달할 것이다. 이런 상황이 김정은에게 숙제다.

올해 미국의 대선, 내년 한국의 대선에서 북한을 이해하는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북한이 원하는 평화협정 체결,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 등이 하루아침에 이뤄지기는 어렵다. 김정은에게 타이밍이 중요하다. 그 타이밍은 5월이다. 라신 제르보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 사무총장은 미국의 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수뇌부가 먼저 할 일은 핵실험 유예 선언”이라고 밝혔다. 그의 현명한 선택을 기대해 본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ko.soo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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