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에 빛난 "부정36년"|「한강전도」의 화가 김학수씨와 「자녀30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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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아버님, 고맙습니다. 건강하시고 부디 오래오래 사세요』
1·4후퇴때 북녘 평양땅에 처자 (2남2여)를 남겨두고 혈혈단신으로 월남해 고아들의 대부노릇을 해온「한강전도」의 풍속화가 혜촌 김학수씨 (67·서울논현동242의38) 는 어버이날인 8일 아침 그해 (1·4후퇴) 이후부터 부자의 인연을 맺어온 30여명의 아들과 딸들로부터 분홍빛 카네이션을 건네 받으며 아픈 과거를 잠시 잊은채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5년간 재혼도 하지 않으신채 저희들을 친자식처럼 공부시키고, 미국유학도 보내고, 취직도 시켜주셨어요』
김신형씨 (38·외환은행대리)는 「그림」「신앙」(기독교)「식구」와 함께 해온 아버지의 지난 35년간 인고의 「삼락」을 회고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박정렬씨 (40·건축업)의 부인 김명화씨 (37· 이비인후과의사)는『그래서 틈만 나면 시아버지를 찾아 외롭지 않게 해드린다』고 했다.
김화백의 「대부」생활은 6·25전쟁도중 서울남산에서 평양태생인 이승만 (54·목사·재미)·승규 (52·조은상사대표) 형제를 만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씨형제와 함께 부산으로 피난해 유엔군을 상대로 도자기그림을 그려 학비를 대줬다. 이후 김화백과 아버지-자녀의 인연을 맺게된 전쟁고아는 모두 30명.
「슬하의 30자녀」중 이승만씨등 목사가 10명, 오순방씨(33·울산대중국문학과장)등 박사도 6명이 배출됐으며 10명은 미국에서 살고 있다.
김화백 슬하의 식구들은 61년부터 김화백의 호를 따 「혜촌회」라는 모임을 조직, 매년 2월13일 김화백의 생일을 기해 원근각지에서 모이고, 자주 왕래를 하며 형제애를 다지고 있다.
1919년 평양에서 출생한 김화백은 15, 18세때 부모를 차례로 잃고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설움을 뼈저리게 느끼며 성장했다.『고향에 두고온 처자식을 생각하고 슬퍼하며 살것이 아니라 부모잃은 젊은이들과 고락을 같이하는 즐거움으로 살기로 작정했지요』 김화백의「삼락」은 그렇게 시작되었다고 했다.

<고도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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