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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박 대통령, 로하니와 정상회담 때‘이란식 히잡’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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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아랍에미리트(UAE)의 이슬람 사원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은 샤일라로 머리를 가렸다. [중앙포토]

5월 1~3일 한국 정상으론 처음 이란을 방문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하산 로하니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이란식 히잡의 일종인 ‘루사리’를 착용하기로 했다.

“상대국 법·문화 존중한다는 의미”
스카프 형태, 패션 아이템 활용도
비이슬람권 여성 지도자 방문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처음
작년 3월 사우디 갔을 땐 안 써

외교부 당국자는 22일 “박 대통령이 정상회담은 물론이고 원칙적으로 전 일정을 루사리를 쓰고 소화할 예정”이라며 “이란의 법 규정과 문화를 존중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결정으로 다른 여성 수행원들도 같은 복식을 갖출 것”이라고 말했다.

히잡은 신체를 가리는 이슬람식 복장을 뜻한다. 루사리는 이란 여성들이 착용하는 히잡의 한 형태다. 한국외대 이란어과 곽새라 교수는 “보통 히잡이라고 하면 눈썹 위까지 가린 채 얼굴만 드러내는 두건 형태를 연상하곤 하는데 루사리는 숄이나 스카프에 가깝다”며 “화려한 색상도 많고 어깨까지 두르거나 목에 묶는 등 다양한 형태로 연출할 수 있어 이란 여성들은 패션 아이템처럼 활용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곽 교수는 “이슬람 율법상 여성은 신체 부위를 최대한 노출하지 말아야 하고 이란은 이를 국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루’는 머리 혹은 얼굴을 의미하고 루사리는 머리 위에 놓는다는 뜻인데 외국에서 온 여성도 반드시 머리카락을 가려야 한다”고 말했다.

당초 실무진 사이에선 “정상이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느냐”는 부정적인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이슬람 율법을 중시하지만 지난해 3월 박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 히잡을 쓰지 않도록 배려한 일이 있다. 박 대통령은 당시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이슬람 사원을 방문할 때만 샤일라(직사각형 모양의 천)로 머리를 가렸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서로 좋은 친구가 되자고 방문하는 것인데 굳이 상대방이 기분 나빠할 소지를 남길 필요가 없다는 취지에서 최종적으론 루사리를 쓰는 것으로 결정됐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결정한 건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이란 방문(2015년 11월) 등 고위급 교류 등을 계기로 당국자들이 직접 현지 상황을 살핀 결과라고 한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이란 핵 협상 타결 전후부터 박 대통령의 이란 방문을 검토해왔다.

국립외교원 인남식 교수는 “이란이 세속적인 시아파라서 오해를 하곤 하는데 신정주의 이념을 기본으로 성직자들이 다스리고 율법상 의무를 철저하게 지키는 국가”라며 “새로운 관계 정립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이란의 신념을 존중해주는 것이 옳은 접근법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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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이란을 방문한 줄리 비숍 호주 외교장관이 로하니 대통령을 만날 때도(왼쪽), 2014년 4월 캐서린 애슈턴 전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가 자리프 외교장관을 만날 때도 루사리를 썼다. [중앙포토]

특히 박 대통령은 이란이 이슬람 혁명(1979년)을 한 이래 방문하는 첫 비이슬람권 여성 지도자다.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의 여성 정상이 방문한 적은 있지만 이슬람 문화권이라 이런 고민은 하지 않았다. 최근 이란을 방문한 서구의 여성 정치인들도 모두 머리카락을 가렸다. 캐서린 애슈턴 전 유럽연합(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와 줄리 비숍 호주 외교장관 등이 대표적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루사리를 느슨하게 썼다가 현지에서 눈총을 받은 서구 여성 정치인도 있었다. 이런 사례들을 바탕으로 문화적 차이로 인한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의전상 여러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 쓰고 있다”고 전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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