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과 함께 참신한 "얼굴들"의 출품 부쩍 늘어나|신선하고 새질감의 작품들로 「중앙시조난」 새기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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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요 몇주사이에 갑작스런 현상이 일고 있다. 새 얼굴이 부쩍 늘어났을뿐 아니라 작품의 질감이나 신선도에 있어서도 그 쪽이 우세한 경향을 띰으로써 이 장의 판도가 달라져가고있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이 장은 차차 매너리즘에 빠지는듯한 인상을 짙게 풍겼었다.
몇해째 내리 겪느라 눈치에 익숙하고 재치만 늘어가는 제자리걸음의 「선수」들이 온통 판을 치는 것은 오히려 약과, 가·익명은 말할나위도 없고 대명·차명까지 일삼는 「투고꾼」들의 횡포에 시달림으로써 이 장은 애초의 순수성마저 위협당하는 지경에 놓여 왔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한말로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을 일찌감치 포기했거나 게을리하기로 작정한 이「꾼」 들에게서 받는 심정이야 다만 「비애」라는 한마디 말로 족한 터이지만 어쨌거나, 「이백 가고 적막강산 몇년을 갔게」라는 노랫말이 실감되게끔 작금에 참신한 신인들의 대거 참여에 힘입어 점차 오염을 씻고 이 장이 새기운을 차리게 된 것은 경하할 노릇이다.
『목청 틔워 보건만』은 시의 발성은 확실한데 시조의 보법을 제대로 익히지 못하고 있다. 몇군데 손을 보아두었으니 눈여겨 살피기 바란다.
『일상의 영가』도 그 발성만은 확실하나 언어가 영글지 못한 상태다. 의미에 구체성을 잃은 것은 그에 말미암는다. 상징·은유·암시의 기능과 추상의 한계를 가늠하는 지혜에 눈을 떠야겠다.
『서울길』은 이와는 좀달리 시적 발성의 대목들과 불확실한 의미의 대목들로 짜여있어 결국은 시로서 설익어있다는 핀잔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위의 3편은 연시조들로서 모두 실속에 비겨 아무래도 부피가 지나친 느낌인데 반해『들길에서』는 그 양자를 조화롭게 꾀함으로써 알쭌한 결실을 빚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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