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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파리의 「차이나·타운」|난민화교 2만 여명 모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월남패망은 파리에 「차이나타운」을 만들었다.
세계의 주요대도시 가운데 유일하게 차이나 타운이란 게 없었던 파리에 중국인 촌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75년 이후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 동남아난민들이 몰려들면서부터다.
월남난민들 가운데 프랑스에 정착한 것은 전체의 7.6%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정착과정이나 생활력 등은 하나의 모범적인 경우가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파리13구. 슈와지·이브리·마세나가 일대가 「센 강가의 홍콩」으로 불리면서 새 명소로 떠오른 차이나타운이다. 이 지역은 지난10년사이 프랑스인 들이 말끔히 밀려나고 중국계 동남아난민들이 경영하는 1백여개의 식당, 50여개의 식료품가게, 17개의 보석상, 기타 보험회사·여행사·푸줏간·이 미용원들이 가득 들어차 성업중이다.
중국무술영화전문상영의 2개의 영화관, 은밀한 사우나탕과 도박장, 댄스 홀도 있다.
이곳에선 4종의 차이나타운신문과 1종의 월간잡지도 나온다.
차이나 타운상인들이 취급하는 상품은 주로 홍콩·대만·싱가포르·태국에서 들여오나 간장·국수·만두 등 일부 식료품은 이들이 세운 대규모공장에서 직접 생산된다.
프랑스내무성 통계에 따르면 75년4월30일 사이공함락 후 프랑스로 이주한 동남아난민은 현재 12만 명에 이르고있다.
이 가운데 8만5천여명이 중국계이며 5만 여명이 파리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지역에 모여 살고 있다. 그러나 당국의 공식집계에 잡히지 않고 있는 밀입국자만도 1만 여명이나 되는 것으로 추산되며 요즘도 매달 6백여명정도가 각종 연줄을 통해 계속 들어오고 있다.
이제는 택시운전사들 조차『차이나타운』하면 으레 여기거니 하고 손님을 데려다줄만큼 유명해진 13구의 차이나타운에는 월남난민들을 포함, 약 2만 명의 동남아난민들이 모여있다.
이 차이나타운은 프랑스사람들에게 있어 하나의 경이다. 그들의 상식을 뛰어넘는 급속한 번창도 그러려니와 이곳을 둘러싼 「신비」가 적지 않은 까닭이다.
중국계 특유의 상술과 근면으로 몇 년 새 소리 없이 이들 차지가 돼버린 이 지역고층아파트들은 이들의 숙소이자 생활터전이다. 빽빽이 들어찬 방마다 재봉틀이 밤낮없이 돌아가고 다리미질이 계속되고 있다. 방마다 만두 빚는 손길이 쉴 틈이 없고 국수기계가 멈출 날이 없다.
별이나 개미인들 이들만큼 부지런하겠는가고 프랑스사람들은 혀를 내두른다.
프랑스노동법상 여성근로자는 밤10시 이후의 노동이 금지돼있으나 차이나타운에선 이 법이 통하지 않는다. 하루 빨리 난민생활을 청산하고 안정된 생활로 재기하기 위해선 하루 24시간 노동으로도 모자란다는 게 이들 모두의 생각이다.
금괴 등 처음부터 막대한 재산을 싸들고 들어온 사람도 물론 없지 않다. 그러나 프랑스까지 오느라 빈털터리가 된 보트 피플이 대부분인 차이나타운의 이 같은 고도성장은 바로 이들 특유의 협동과 근면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들의 부지런함만큼 프랑스인들을 놀라게 하는 게 또 중국계 난민들의 자치와 협동심이다.
차이나타운에선 전혀 범죄신고가 없다. 모든 문제를 자치적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경찰이 끼여들 틈이 없다. 그래서 마약밀매·도박·매춘 등이 차이나타운의 자금원이란 소리가 꼬리를 물지만 그 어느것 하나 확인된 일이 없다. 비밀엄수.
『행복하게 살려면 숨어살아라』는 차이나타운의 비결이 철저히 지켜지고 있는 때문이다. 이 곳 행정당국자들이 『관청도 모르는 사이에 그만 차이나타운이 생겨 버렸다』고 실소하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프랑스상륙 10년. 월남난민 등 동남아난민들은 이제 망국의 아픔을 딛고 재기하고있다. 생활기반이 잡히면서 찌들었던 얼굴에서도 웃음이 되살아나고 있다.
그러나 고향의 그리움은 무엇으로 달랠 것인가. 차이나타운의 고층빌딩 속에 되는대로 자리잡은 절마다 불공행렬이 그치지 않고 있으며 부처님 앞에 엎드린 이들의 얼굴은 언제나 망향의 우수로 가득 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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