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관광 배우는 21명 다국적 유학생반의 이색수업 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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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대구시 북구에 자리한 영진전문대 연서관 303호 호텔실습실. 바텐더가 와인을 마시러 온 관광객을 맞는 상황을 가정해 20여명의 유학생이 한국어로 수업을 하고 있었다.

손님 역할을 맡은 일본인 유학생 기사키(20·여)가 서툰 한국말로 "이 와인은 어떤 맛인가요"라고 묻자 바텐더 역할을 맡은 중국 유학생 취퉁(22·여)이 "과일 맛이 난다. 한국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인기 와인"이라고 서툴게 대답했다.  

중국·일본·베트남·러시아 등지에서 온 유학생 21명으로 구성된 영진전문대 국제관광계열 관광통역반의 수업 장면이다. 한류(韓流) 관광을 가르치는 이색 유학생반이다. 단순히 유학생을 모아 한국어를 가르치는 어학반이 아니라 한류 관광을 한국어로 배워 4학기 80학점을 이수하는 정규 학급이다.

3월에 유학온 취퉁은 "한국 드라마 '태양의 후예'와 '대장금'을 좋아했다. 드라마 배경으로 나오는 한국의 아름다움을 동경하다 유학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버스로 20시간, 비행기로 8시간을 이동해 한국에 왔다는 러시아에서 온 만지코바올가(21·여)는 "한국어로 관광학을 배워 졸업한 뒤 귀국해 한국통으로 활약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수업은 색다르게 진행된다. 조선 선비 문화체험, K-팝 행사 참여, 전통시장 장보기 등 다양하다. 지난달 첫 수업은 한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촬영지였던 경남 통도 환타지아에서 1박2일간 진행됐다. 지난 2일엔 대구의 대표적 관광지인 근대문화 거리를 찾았다.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관광박람회를 견학하기도 했다. 다음달엔 경북 경주의 신라유적지를 둘러보고 조선 선비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안동 선비문화수련원을 찾아간다.

9월엔 K팝 가수들의 공연을 단체 관람한다. 팬클럽 단체 가입이 수업의 일부로 계획돼 있다. 10월엔 안동 탈춤 페스티벌을 체험한다. 한국인 가정에서 생활하며 익히는 명절 차례문화 배우기 수업도 있다. 모든 체험은 별도 리포트를 제출해야 한다. 국내의 여타 관광학과 학생처럼 관광실무·대인관계론·대학영어도 배운다.

관광 전문가를 양성하는 만큼 인턴십까지 있다. 학생들은 졸업 전에 중국·일본에서 온 단체관광을 위해 가이드 보조를 한차례 이상해야 한다. 졸업 과제 역시 '자국에 돌아가 소개할 한국 관광상품 개발', '지역과 일정, 예산을 짜서 판매 가능한 관광코스 개발' 등이다. 졸업 과제를 내지 않으면 '관광 전문학사' 학위를 받지 못한다.

국내 대학에서 처음 시도된 이색 유학생 반은 강병주(49) 교수의 아이디어가 출발점이다. 그는 국내 전문대 학생 수가 계속 줄고 있어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마냥 앉아 고등학교 졸업생을 기다려서는 지방 전문대가 살아남을 수 없다고 봤다. 그러다 지난해 5월 일본 오사카에서 한류에 열광하는 젊은 학생들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강 교수는 "한류 관광, 한국어를 주제로 유학생 반을 꾸리면 좋겠다고 생각해 수업 프로그램을 만들어 일본과 러시아·중국·베트남의 자매대학, 고등학교에 알렸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학생들이 하나 둘 찾아오더니 20명을 넘었다.

학교 측은 한류 관광을 배운 유학생을 위한 별도의 취업지원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일본 국제공항, 중국 대형 항공사와 졸업생 취업을 협의 중이다. 베트남과 러시아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에도 외국인 한류 관광 전문가가 있다고 알리고 있다.

대구=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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