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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초전서 너무 전력투구한 감"|개원협상 결렬과 앞으로의 정국<기자 방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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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회개원을 위한 여야협상이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군요. 이제 국회 부재상태가 장기화돼서 국회가 4월중에 열리기는 어려워진 것 같지요.
-아무래도 개원은 5월도 중준 이후로 넘어갈 것 같은데 민정당과 신민당이 초장부터 너무 강경하게 맞붙은 게 아닐까요.
-신민당이 대여 강경으로 나간 배경에는 지난번 총선에서 나타난 민심의 흐름에 대한 의식, 그리고 상도동의 입장과 동교동의 전략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같아요.
-김동영 신민당 총무를 직접 지휘하는 김영삼씨가 시종일관 강경했었지요. 두 김씨가 처음 만나던 날 김영삼씨는 김대중씨에게『당신의 사면·복권이 해결되지 않는 한 반년이든, 1년이든 버티겠다』고 했다지요.
-김영삼씨로서는 그래야 할만한 이유들이 있죠. 자기가 내세우는 명분도 그렇고 지금 같아선 김대중씨가「더 박해받는」투사로 부각될 형편이 아닙니까.
-개원지연이 장기화돼서 여론의 압력을 받거나 이런 사태에 대한 당내 불만이 나와도 모두 김대중씨 사면·복권문제 때문이라고 넘길 수가 있다는 계산은 없을까요.
-동교동 측 속셈은 확연치는 않지만 사면·복권문제를 1차 과제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까. 김대중씨는 오랫동안 핍박을 받아왔으니까 대통령의 방미를 앞둔 지금이 밀어붙일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지요.
-실제로 동교동계 소속 부총무를 통해 나타나는 그쪽 자세나 18일의 확대간부회의에서의 동교동계의 발언을 보면 사면·복권문제에서는 절대 양보하지 못하겠다는게 역연해요.
-김대중씨가 자신의 문제로 개원협상이 안 되는 듯한 인상을 주기 싫어 자기는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풀어주라고 했다는데 그것은 결국 자신을 풀라는 얘기죠.
-신민당 강경 자세의 밑바닥에는 국회를 대통령 방미에 활용하려는 생각 같은 건 초장부터 어림없다는 생각도 깔려있어요.
-11대 국회와는 뭔가 달라져야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게 있어요. 신민당이 민한당은 아니다라는 식의.
-여당사람들도 야당 측에 일종의 11대 콤플렉스 같은 게 있다고 보더군요.
-그 동안 협상에 상당히 열성적이었던 민정당 측은 총무회담이 결렬됐는데도 별로 아파하지도 않고 오히려 홀가분하게 손을 터는 느낌을 주었는데 방미 전에 꼭 국회를 개원하려고 무리할 필요가 없다는 사인이 나온 것 같아요.
그 동안 민정당이 22일 내 개원에 열성적이었던 것은 따지고 보면 대통령 방미를 앞두고 원 구성을 끝내 모양을 좋게 해보자는 의도가 있었던 게 사실이어요. 그런데 무리하게 개원과 방미를 결부시킬 필요가 없어지니까 홀가분하게 손을 털어 버린 거지요. 물론 성사가 안 됐으니 속은 좀 쓰리겠지만요.
-여당 측은 17일 총무회담에서 야당 측의 사면·복권을 5·17의 원인 무효라는 논리와 관련시킨 대목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렇지요. 김대중씨의 사면·복권이 그런 식으로 이뤄지면 5·17과 제5공화국 출범의 정당성을 토대로 하는 현정권의 정통성을 흔드는 결과가 되고 광주사태에 대한 재조사의 요구 등 일련의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한다고 보는 거죠.
-결국 앞으로 제기될 광주사태 진상조사 문제, 개헌문제로 이어질 정통성 시비의 전초전이었던 셈이죠. 정권교체를 놓고 어차피 일전을 겨뤄야 할 두 정당이 일합에부터 밀릴 수 없다는 대결의식 같은 게 팽팽하게 작용했습니다.
-그렇지만 첫 합에서부터 너무 체중을 몽땅 실은 감이 있잖아요. 처음에는 들어 줄만한 말랑말랑한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더니 너무 급하게 나가다가 체면과 명분이 몽땅 걸려 꼼짝 못하게 된 감이 있읍니다.
-여야의 전략을 보면 협상진행과 함께 조금씩 경화된 것 같아요. 야당 측은 두 가지 조건이 등원의「전제조건」이 아니라「여건조성」이라면서 시작했는데 결국 전제조건 비슷하게 돼 버렸잖아요. 전략상의 모순이 있는 것 같아요.
-김동영 신민당 총무도 미스 블로를 낸 게 아니냐고 걱정하더군요.
-동교동 측에서는 큰소리치더니 한 게 뭐냐고 은근히 공박하고 있어요. 언젠가 벌어질 당권경쟁을 의식하고 있는 양측의 속셈이 간단없이 노출되고 있어요.
-신민당 일각에서는 이번에 밀리면 정부·여당 내의 매파의 소리를 크게 할 기회를 준다고 보는 분석도 있어요.
강경하게 버티면 결국 대화를 주창하는 온건론자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거죠. 아전인수 식의 주장이지만...
-민정당이 처음에 좀 유연하게 나왔던 것은 사실이죠. 전면 해금도 단행됐으니 전반적으로 푸는 쪽으로 나간다는 완만한 방향에서 전략을 짰던 게 중간에서 좀 급류로 변한 셈이죠.
-민한당의 공중분해가 경화의 결정적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총선 이후 기고만장해진 신민당에 더 밀리다간 큰 일 나겠다는 상황인식이 생긴 거죠. 어떤 당직자는 이런 얘길 하더군요. 신민당은 마치 민정당이 패주병이나 된 듯 뭣 내놔라 뭣 내놔라 한다는 겁니다. 민정당은 패주병이 아닐 뿐 아니라 패주병처럼 보이게 하려는 함정에도 결코 빠질 수 없다는 거예요.
-일종의 감정적 대결 양상이라고 하겠는데 이런 상태가 오래 가면 피차 좋을 게 없잖아요.
-민정당 측 분위기는 상당히 느긋해요. 이렇게 노력했는데도 야당 측의 거부로 국회가 안 열리면 국회부재의 책임을 묻는 여론의 압력은 신민당에 돌아가고 만다고 보는 거죠.
-신민당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아요.국회가 안 되면 신민당과 민추협이 보조를 같이 해 지방에 내려가 단합대회, 보고회를 열어 민정당을 비판하면 여론의 화살은 정부·여당에 돌아간다는 겁니다.
-그러나 국회가 빈집으로 장기간 방치되면 국민으로부터 받을 불신과 불안감은 어떻게 하죠.
-김동영 총무도 국민의 비판이 있을 것이라는 점은 걱정하더군요. 신민당이 민한당과 다르다는 것은 입증했지만 그렇다고 신민당이 너무 강력해지면 혼란이 올지도 모른다는 일반인의 불안감을 입증하는 꼴이 돼서도 곤란하겠지요.
-해금은 해주면서 같은 맥락인 사면·복권을 늦추는 점은 논리에서 민정당 측이 밀릴지 모르는 대목이에요. 그러나 국회의 개원에 선행조건을 걸겠다는 신민당 주장 역시 어불성설이에요.
-결국 개원협상의 결렬은 두 정당의 정국운영 능력에 문제를 드러냈다고 봐야겠지요. 정치력의 미숙이랄까.... 아무튼 두 정당에 모두 마이너스예요. 국민을 의식한 정치가 아니라 당내 사정, 계파간의 갈등, 감정대립 이런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하고 말았으니 .
-민정당은 만만찮은 상대를 만나 초전에서부터 산뜻한 솜씨를 못 보이고 만 셈인데 이런 사태가 장기화되면 정국주도의 책임을 진 여당에 비판이 돌아오고 만다고 걱정하는 간부도 있더군요.
-신민당이 뭔가 달라진 것을 보이려는 것은 좋지만 좋게 달라져야지, 국민에게 불안감이나 주는 식으로 달라져선 곤란하지요.
-그러나 17일 총무회담 내용을 보면 타개할 길이 모두 막혀버린 것은 아닌 것 같으니 너무 사태를 심각하게만 볼 필요는 없겠죠. 신민당 측이 사면·복권 문제에 대해 내놓은 국회 공동발의 제안에서부터 실마리를 풀어낼 수도 있잖아요.
-적당한 시기에 사면·복권을 해주겠다는 것은 민정당의 기본방침이지요. 다만 시기와 방법인데 신민당이 바라는 원상회복 식이 아니라 개전의 정에 따라 은전을 베푸는 식으로 한다는 거죠. 사면·복권이 상례적으로 실시되는 시기에 포함시키는 방식을 취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신민당도 국회에 들어가려면 뭔가 명분을 찾아야 하는데 방미, 남북경제회담 등 국회를 성사 쪽으로몰 외부적 요인이 없어지면 더욱 명분 찾기가 어려워질텐데 .
-민정당 측은 4·19, 방미, 5·17 같은 민감한 시기를 넘겨야 사면·복권을 할 수 있다는 것 같아요.
-이제 와서 당장 뭣이 이뤄지려면 극적인 돌파구가 열려야 하는데 3당대표를 등장시키는 방안도 고려는 했던 모양이나 자칫 아무 것도 안되면 스타일만 구긴다고 그만둬버렸답니다. 역시 총무들이 다시 나서야겠지요.
-이번 협상을 보면 양당 총무의 재량권이 너무 협소해요. 야당 총무는 상도동·동교동을 두루 쫓아다녀야 하고, 여당 총무는 정부방침에 묶여있으니 재량권 없는 총무들이 모여 결실을 보기란 어려운 일이지요.
-아무튼 국회 부재상태가 오래 계속돼서는 안될 것 같아요. 노사문제, 경제의 어려움 등 국회에서 다뤄야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잖아요.
강한 야당이 나왔으니 여러 문제에 좀 국회다운 국회를 보여줬으면 기대하는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정리=김형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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