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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깬 87년체제 책임정치 실현할 새틀짜기 나서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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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5호 1 면

4·13 총선의 결과는 정치지형의 대변화였다. 누구도 권력을 독점할 수 없는 3당 체제와 여소야대 국회.


전문가들은 “유권자들이 투표로 ‘1987년 체제’를 깨뜨렸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87년 민주화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면서 대통령 5년 단임제와 소선거구제는 한국 정치의 뼈대가 됐고, 소선거구제가 보스 정치와 결합하면서 지역할거 정치의 폐해도 고착화됐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선 ‘보수의 심장’ 대구를 비롯한 영남권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야당 성향 무소속 당선자가 다수 배출됐다. 호남에서도 새누리당 당선자가 2명이나 나왔다. 지역구 투표와 비례대표 투표를 다른 정당에 던지는 유권자들의 전략적인 교차 투표 앞에서 소선거구제는 사실상 무력화됐다.


중앙SUNDAY가 이홍구·김황식 전 국무총리, 조순 전 경제부총리, 김우창(영어영문학) 고려대 명예교수, 최장집(정치학) 고려대 명예교수, 김병준(행정정책학부) 국민대 교수 등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 6명에게 4·13 총선 결과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이들은 각론에선 ▶개헌론 ▶선거제도 개편론 ▶정치문화 개선론 등 다양한 해법을 제시했지만 “이미 구체제(Ancient Regime)가 돼 버린 87년 체제를 넘어 30년 만에 새로운 민주주의 체제를 마련하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는 데는 일치했다. “20대 총선이 구체제의 마지막 선거가 되길 바란다”고도 했다.


87년 체제에 대해 이홍구 전 국무총리는 “우리 국민이나 정치권은 당시 직선제·단임제로 개헌하면 다 된다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민주주의의 그 나머지를 채우는 데 신경을 쓰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최장집 교수 역시 “87년엔 대통령 직선제만 이뤘을 뿐 대통령이 국가를 어떻게 운영하고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에게 모든 걸 맡겨 버리는 바람에 한국의 국가권력은 중앙으로 초집중화돼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어렵고 위험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었다.


최 교수는 “선거를 통해 정권이 바뀌고 대통령이 갈려도 권력 집중은 그대로 이어진다. 형식은 민주주의인데 내용은 권위주의인지 민주주의인지 혼동스러운 상황”이라며 한국 정치를 “대표만 있고 책임은 없는 ‘대통령 중심의 민주주의’”로 규정했다.


87년 체제를 넘어설 해법으로 이 전 총리는 “장기적 안목으로 정책을 집행할 수 없는 5년 단임제는 87년 3김(金)씨의 컨센서스 때문”이라며 “이제 4년 중임제 개헌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장집 교수는 “사회적 약자들의 제도권 진출을 막는 문턱이 우리 정치는 너무 높다”며 “독일처럼 정치가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녹색당·해적당 등 다양한 대안 정당이 나오는 토대가 된 독일식 정당명부제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병준 교수도 중선거구제 또는 독일식 정당명부제 도입 등 선거 제도의 개선을 강조했다. 그는 “87년 체제 극복을 위해선 권력의 분산과 분권이 핵심이다. 이를 위한 전면적 국가 리엔지니어링(reengineering)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순 전 부총리는 “지금의 체제는 대통령이나 국회 어느 누구도 국정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며 ‘정치의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총리가 확실하게 책임을 지는 의원내각제를 도입해야 한다”며 개헌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김황식 전 국무총리 역시 “사회가 많이 바뀌었는데 우리 헌법의 기본권 조항은 아직도 그대로다. 환경, 기후변화, 정보화 시대 이행, 난민문제, 생명윤리 등을 헌법이 다뤄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우창 교수는 “여당이나 야당이나, 보수나 진보나 큰 차이가 없는 만큼 이제 정치권은 (87년 체제의 부산물인) 이데올로기 논쟁에 집착하지 말고 현실적 문제의 해결방법을 찾아나갈 수 있는 정치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관계기사 3~5면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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