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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전기차 돈받고 충전, 너무 빨리 코드 꽂은 환경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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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직장인 정상동(47·서울 목동)씨는 전기차인 르노삼성차 SM3 ZE로 출퇴근한다. 서울 가산동 회사까지 왕복 거리는 약 30㎞. 정씨는 14일 출근길에 회사 근처 급속 충전소에 들렀다 깜짝 놀랐다. 그동안 무료였던 충전료가 유료로 바뀌어서다. 70% 충전했더니 4800원이 찍혔다. 정씨는 “따져보니 한 달에 3만원 꼴로 충전료를 부담해야 할 것 같다. 휘발유차·디젤차에 비해 큰 돈은 아니지만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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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가 전기차 급속 충전료를 유료화하면서 벌어진 풍경이다. 환경부는 11일부터 1킬로와트시(kWh) 충전시 313.1원을 징수키로 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전기차 소유자는 연간 주행거리 1만3378km 기준 월 평균 5만8000원의 충전료를 부담해야 한다. 같은 주행거리 기준 휘발유차(13만2000원)·경유차(9만4000원)의 절반 이하 수준이지만 그동안 공짜였던 점을 감안하면 ‘쇼크’다.

민간 참여 유도 위해서라지만
‘걸음마’ 국내 상황 감안 안 해

통신망 없이 통신강국 됐을까
인프라부터 닦아야 시장 성숙

유료화 직후 전기차 인터넷 카페에선 “이래서 전기차 누가 사겠느냐”는 글이 줄줄이 올라왔다. 4190만원짜리 SM3 ZE는 한 번 완충했을 때 최대 135㎞를 달린다. 6월 출시 예정인 현대차 아이오닉 일렉트릭(전기차)은 4000만원으로, 1회 완충시 180㎞까지 달릴 수 있다.

소비자들이 차 값은 (같은 차급의) 두 배고, 주행거리는 짧고, 충전소는 부족하고, 충전 시간은 오래 걸리는(급속 완충시 약 30분) 전기차를 선택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저렴한 유지비(충전료)다. 전기차 보급에 앞장서야 할 정부가 ‘악수’(惡手)를 뒀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필수 한국전기차협회장은 “현대차가 아이오닉을 막 출시하고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국내 공략이 가시화한 상황에서 한국 전기차 시장 성장에 브레이크가 걸렸다”고 지적했다.

환경부가 공짜였던 충전료를 유료로 바꾼 건 민간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일정 수익을 보장해야 민간에서 충전 인프라를 빠른 시일 내 구축한다는 논리다. 환경부 관계자는 “전기차 보급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정부가 충전료를 계속 지원할 수는 없다. 미국·유럽을 비롯한 선진국도 충전료를 부과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진국과 단순 비교하긴 어렵다. 아직 한국 전기차 시장은 걸음마 수준이기 때문이다. ‘전기차 천국’으로 불리는 노르웨이의 전기차 보급대수(5만대)는 국내 보급대수(5767대)의 9배에 이른다. 급속 충전소(337개)는 미국(3만1792개)·일본(3000여개)·중국(3만1000개) 대비 턱없이 부족하다.

시장이 성숙해야 인프라에 돈이 몰린다. 환경부는 전기차 시장이 성숙했다고 본 것 같다. 하지만 인프라부터 닦아야 시장이 성숙하는 경우도 있다. 충전 인프라가 없으면 무용지물인 전기차가 대표적이다. 시장이 미성숙한 만큼 자동차 업체 스스로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한계가 있다. 충전료 유료화가 시기상조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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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환
경제부문 기자

독일이 자동차 강국이 된 건 ‘아우토반’이란 고속도로 인프라가 탄탄했기 때문이다. 한국이 휴대전화 강국이 되는 데는 사통팔달 뚫린 통신망이 한 몫 했다. 전기차는 대표적인 미래 신성장 동력이다. 일단 시장부터 키우기 위한 묘수를 짜내야 한다. 단계적으로 충전료를 유료화하거나 유료화 시기를 늦추는 대안을 고려해야 한다. 공공기관 업무용차나 택시, 카쉐어링 전기차 등 일부는 유료화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도 방법이다. 전기차란 꽃이 채 피기도 전에 질까봐 하는 얘기다.

김기환 경제부문 기자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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