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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죽산 박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죽산 박씨는 신라 첫 임금 박혁거세를 시조로, 고려 공신 박기오를 득관조로 한다.
박기오는 신라 29대 경명왕의 8왕자 중 넷째 언립(죽성대군)의 아들이라고 박씨네 족보는 밝힌다.
고려초 공신으로 삼한 벽상공신에 올라 죽산을 식읍으로 받아 후손들의 본관이 됐다. 익호는 충정.
그의 후대에서 철성백파, 찬선공파, 대업경파, 문광공파의 4파가 갈렸다.
철성백 박서는 중조 기오의 9대손. 고려 고종 18년 살예탑을 대장으로 쳐들어온 몽고 군을 철주에서 요격하고 귀주에서 성을 굳게 지켜 버틴 공으로 후일 벼슬이 문하평장사에 이르렀다. 고려조는 그의 위훈을 기려 그후손에게 음성과 고성을 식읍으로 주어 그의 후손 중 일부가 음성 박씨와 고성 박씨로 분관 해간 것으로 알려졌다.
문광공 박전지는 4대파 중 후손이 가장 많아 조선조에 상신 2명을 배출하는 등 죽산 박문의 기개를 크게 높였다.
중조 기오의 11대 손이자 판서휘의 아들인 행산 박전지는 「고려조 4대시인」으로 꼽히는 문장. 원나라에가 그곳 명사들과 교유했고 원세조의 사랑을 받아 정동성도사로 임명받았다. 충선와때 밀직부사, 중경(개성) 유수를 지냈고 연흥군에 봉해졌으며 충숙왕때는 수첨의찬성사에 이르렀다.
충숙와때의 공신 박원은 그의 아들이며 죽산군 문보, 문충공 덕룡, 판서 수룡, 제학 문화, 충현공 문수는 그의 손자다.
충현공 박문수는 고려말 정승으로 공양와 4년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에 들어가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켰다.
죽산 박씨는 조선조에 들어 39명의 문과급제자와 영의정 박원형·박홍구 등 2명의 상신을 냈다. 박원형은 문종대 호당에 뽑혔고 세조가 즉위하자 좌익 공신으로 판서를 역임했으며 세조 13년 이시애난을 평정, 좌의정에 올랐다. 예종이 보위에 오르자 익대공신 2등으로 연성부원군에 봉해져 영의정에 이르렀다. 한평생을 청렴과 검소를 신조로 임금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아 세종은 그를 가리켜 급암(한나라의 직언잘한 간신)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의 5대손 박홍구는 도정 박란영의 아들. 선조 15년 문과에 감과로 급제.
광해군 말년에 좌의정에 이르었으나 인조반정으로 벼슬이 깎이고 다음해 이괄난이 일어나자 광해군 복위를 음모했다는 조카 박윤장 사건에 연루돼 심문을 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숙종 17년 신원, 복관됐다.
좌상 홍구와 동기간인 박신룡은 인조때 무과에 급제, 인조 정묘 1월 역신 강홍립과 이윤 등이 적을 이끌고 침공하자 권지중군으로 적을 용만에서 막다 순절했다.
박원의 10대손 박명현과 11대손 박명룡은 무장으로서 가문을 빝낸 인물.
박명현은 선조 29년 이몽학이 난을 일으켜 홍주를 위협하자 목사 홍가신의 휘하에서 임득의와 함께 성을 지키며 청양까지 추격, 반군을 섬멸했다. 정서재란 때에는 토포사·충청도 방어사·전라도 병마절도사 등을 역임, 선조 37년 정난공신 2등에 오르고 연창군에 봉해졌다.
광해군때 무과에 급제한 박명룡은 형 성룡과 정묘호란때 순절한 무인.
뒷날 병조판서에 추증됐다.
선조 25년 임진왜란때 권율의 막하에서 행주대첩에 큰 공을 세운 박기성은 충현공 문수의 8대손으로 정서재란때 구예에서 전사했다.
그의 동생 승성과 종제 언정도 진주성에서 왜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 면암 최익현은 비문을 지으며 『한집에서 삼충이 났음은 고경명과 비교가 되나 효열이 더 있으니 장한 일』이라고 하였다.
근세 인물로는 3·1운동 이듬해 형 박치조·박건채와 함께 평북 선주군청과 경찰서에 폭탄을 던져 파괴하고 체포돼 사형을 당한 박치의가 국난에 목숨을 던지는 충절의 전통을 이었다.
고종 20년 문과에 급제, 여러 관직을 거쳐 비서원승을 지낸 박주현은 남원에 내려가 군민회를 조직하고 만석의 가산을 풀어 항일 운동의 군자금을 제공했다가 일군에 체포되어 고문 끝에 순사했다.
죽산 박씨는 해방 후에도 사회 각계에 많은 일꾼을 냈다.
광복군 창설에 일익을 담당했던 예비역 준장 박기성, 2, 5대 국회의원과 농림부 장관을 지낸 박제환, 제헌 국회의원 박종찬, 5대 국회의원 박환생, 국전 초대 작가이며 동덕여대 교수인 화백 박석환, 경희대 법대 학장 박연호, 주 제네바 대표부 대사 박근, 학술원 원로 회원 박병희 등이 있다.

<지명 인사>
(종친회 제공·무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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