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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회 헌혈’ 김씨, ‘공무원봉사단’ 박씨, 같은 날 신장 기증한 나눔 베테랑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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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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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 기증수술을 위해 13일 병원에 입원한 박순홍(왼쪽)·김건형씨. [사진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도울 수 있으니 돕는 거죠. 뭐 거창한 이유가 있나요.”

김씨 “교통사고 후 가치관 변화”
박씨 “나이 더 들기 전에 결심”
22년·16년 기다린 환자에게 이식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를 통해 같은 날 신장을 기증하는 김건형(35)·박순홍(56)씨는 13일 쑥스러운 듯 입을 모아 말했다. 두 사람은 14일 오전 7시와 낮 12시에 서울아산병원에서 신장을 이식해 주기 위한 수술을 받는다. 김씨의 신장은 22년간 기다려온 이모(53)씨에게, 박씨의 신장은 16년간 기다려온 주모(53)씨에게 각각 이식된다.

김씨와 박씨는 이날 서로 처음 만났고 자신의 신장을 이식받을 사람의 얼굴조차 모른다. 하지만 둘 다 오랫동안 주변을 도와온 ‘봉사 베테랑’이다.

먼저 수술을 받는 김씨는 6년 전부터 한 달에 두 번씩 꾸준히 헌혈을 했다. 벌써 130회가 넘는다. “원래 남을 돕는 일에 관심이 많진 않았어요. 이기적이었죠. 그런데 7년 전 교통사고가 크게 나서 단기 기억상실증이 왔어요. 사고 후 두 달 동안의 기억이 거의 없죠. 정신을 차려보니 정말 삶과 죽음이 종이 한 장 차이더라고요. 그때 그냥 기억을 잃고 죽었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그 뒤로 뭐든 할 수 있는 걸 찾게 됐어요.”

김씨가 찾은 방식은 헌혈이었다. 그가 가는 헌혈의 집은 700회 이상 헌혈해 ‘헌혈왕’으로 불리는 손홍식(66)씨가 찾는 곳이기도 하다. 김씨는 간호사를 통해 손씨가 신장과 간을 기증했다는 얘기를 듣고 자신도 기증을 약속했다.

강원도청 공무원인 박씨는 2001년부터 공무원 봉사활동 모임을 시작해 현재 회장을 맡고 있다. 매달 장애인 가족들을 찾아가 돕는다. 30명이던 회원 수가 100명을 넘을 정도로 커졌다. 박씨도 신장 기증을 약속했다. 그는 “2005년 봉사활동을 하던 중 우연히 장기기증 관련 책자를 읽고 언젠가 해야지 마음만 갖고 있었는데 나이가 너무 들면 기증이 어렵다는 걸 알았다. 아차 싶어서 지난해 8월 서약을 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기증받는 분들이 새 삶을 찾아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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