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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는 거창한 것 아닌 아름다운 것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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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가속도로 산업화시대로 치닫고 있는 요즈음 사회 일각에서 「예의」에 대한 반성의 물결이 조용히 일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저마다 살기에 바빠 예절문제 같은 것은 뒤쪽으로 밀어놓은 감도 없지 않았다. 기차에서 내리면 『간첩신고하라』는 방송, 지하철안에서도 납세재촉은 있어도 구체적으로 타고 내리는 질서에 대한 주의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이는 우리의 현실을 단적으로 표현해주는 상징적 현상이기도 하니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요즈음 들어 예절이 사회문제로 등장하게 된 것에서 이제는 어느정도 우리도 『생활의 여유가 생겼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흐뭇하다.
옛 사람들은 『창고가 가득차야 예절을 알고 의식이 충족하면 영욕을 안다 <관자> 』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예절은 이런 거창한 차원의 것이 아니다.
창고의「가득 차고」「비우고」는 상관없이 의식이 넉넉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인간이면 누구나 최소한 지켜야 되는 예의-외래어지만 요즈음 흔히 에티켓으로 통용되는 그것이다.
그러므로 예절하면 갓쓰고 도포입던 시절의 골치아픈 제약, 그래서 시대착오적으로 생각되어지는 면도 있지만, 「예의」하면 양의 동서와 고금을 초월하는 공감지대인 것이다. 다만 그나라 그민족의 풍속에따라 그 양식에 있어 상이점이 있는 것은 어쩔수 없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풍속이란 글자는 원래 「상풍하속」의 뜻으로「풍」속에는 교화의 뜻이 들어있고, 「속」속에는 이를 본받는다는 뜻이 포함된다. 즉 상류계층의 규범을 일반 서민들이 따라가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그 상류의 규범이란『사소절』이란 책에서 보듯이 유교 윤리에 기초를 둔 행동강령이어서 판에 박은 듯이 조선조 선비들의 전형을 만들어 놓았고, 여성은 여성대로 이 기초적 인륜도덕 위에 남성 편중사회의 굴레가 덧씌워진 것이었다.
이른바 『내훈』 『규훈』 『규곤의칙』 등이 여성교양의 교과서다. 그러므로 이 속에는 오늘날의 시점에서 보면 켸켸묵은 것들도 섞여 있다.
그러나 옛것이라고 다 버릴 것은 아니다. 그중에는 세상이 백번 바뀌고 아무리 물질만능 ·배금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이라 하더라도 홀륭히 통용되는 아름다운 「예의」들이 보다 많이 들어 있다.
그것은 앞서 말한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그야말로 「예스런」 자세인 것이나, 오늘날 내 자유도 소중한 것처럼 남의 폐도 되지 말아야하는 민주시민의 교양의 「가나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런 예들을 얘기해 본다.

<필자약력> ▲23년 서울출생 ▲숙명여대 및 대학원(국문학)졸 ▲『궁중 풍속 연구』로 문학박사 ▲일본 동경 외국어대 교환교수 (77∼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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