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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리, 히로시마 위령비에 헌화 … 미국 “원폭 사과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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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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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오른쪽)이 11일 미 국무장관으로서는 최초로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방문해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헌화하고 있다. 왼쪽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 [히로시마 AP=뉴시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11일 미 각료로는 처음으로 일본 히로시마(廣島) 평화기념공원을 방문했다. 미국은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탄을 투하해 사실상 태평양 전쟁을 종결시켰다.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외무장관 회의에 참석 중인 케리 장관은 이날 참가국 외무장관들과 함께 피폭의 상징인 평화기념공원 내 원폭 자료관을 참관하고 위령비 앞에서 헌화·묵념했다. 이어 피폭에 의해 건물의 골조와 외벽 일부만 남은 원폭돔(옛 히로시마 물산진열관)도 찾았다. 원폭 돔 방문은 당초 일정에 포함되지 않았으며 케리 장관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이 건물은 1996년 세계유산으로 등록되면서 핵무기 피해의 참상을 보여주는 상징물이 됐다.

일정 없던 피폭 상징 원폭돔 찾아
“미래의 핵 위협 차단 일환” 강조
오바마도 내달 방문 여부 촉각
일본 ‘전쟁의 피해자’ 부각 우려

케리 장관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상과 가진 회담에서 “(이번 방문은) 평화의 중요성과 세계를 더 안전하게 만드는 강한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궁극적으로 세계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없앨 수 있기를 희망하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다시 과거를 논의하고 스러져간 이들을 기리지만 이번 방문은 과거에 대한 것이 아니다”며 “이것은 현재와 미래에 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자료관은) 우리에게 핵무기의 위협을 끝낼 의무가 있을 뿐만 아니라 전쟁을 피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여야한다는 점을 환기시킨다”는 방명록 내용도 공개했다.

이는 그의 히로시마 방문이 미국의 원폭 투하에 대한 사죄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핵무기 위협이 상존하는 현재 상황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내건 ‘핵무기 없는 세계’라는 미래 비전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미 정부 당국자도 이 점을 분명히 했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케리 장관을 수행 중인 미 정부 관리는 취재진에 “케리 장관이 사과를 하려고 히로시마에 온 것이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노(no)’”라고 밝혔다. 그는 대신 “만약 많은 이들이 희생된 비극적 사건에 대해 모든 미국인과 일본인이 슬퍼한다고 케리 장관이 생각하는지를 묻는다면 그 대답은 ‘예스(yes)’”라고 덧붙였다. 케리의 이번 방문을 확대 해석하지 말라는 취지로 풀이된다.

기시다 외상은 이날 “G7 외무장관의 첫 평화기념공원 방문은 ‘핵무기 없는 세계’를 향한 기운을 다시 고조시키기 위한 역사적인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도 “세계의 지도자들이 피폭의 실정을 접하는 것은 ‘핵무기 없는 세계’를 향한 기운을 높이는데 극도로 중요하다”고 밝혔다.

케리 장관의 이번 방문에 대한 미 국내외 평가는 다음달 말 일본 미에(三重)현 이세시마(伊勢志摩) G7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방문 여부의 결정적 변수가 될 전망이다. 히로시마 출신의 기시다 외상이 주도한 이번 일정은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가해 역사를 희석시키고 피해의 역사만 부각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북한 핵실험 비난=G7 외무장관들은 이날 회의 후 발표한 성명에서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 미사일 발사를 강력하게 비난했다. 성명은 “핵무기 없는 세계를 위한 여건을 만들어내고 모두에게 더 안전한 세계를 추구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을 재확인한다”며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를 가장 강력한 표현으로 비난한다”고 밝혔다. 이어 “(북한의) 조직적이고 심각한 인권 침해는 유감”이라며 “납치문제를 포함한 인권 관련의 우려에 즉각 대처할 것을 강하게 요구한다”고 밝혔다.

도쿄·워싱턴=오영환·채병건 특파원 hwas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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